[인터넷사커서핑]신문로 호랑이 뒤 숨은 얘기

  • 입력 2001년 5월 11일 19시 29분


필자는 최근 공개된 KFA의 새로운 엠블렘을 본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얘들 또 장난치나...? 안암골, 무등산에도 모자라서 이젠 서울 시내 한복판 신문로에서도 호랑이를 키울 작정인가...? 그 난리를 치고 만든 게 고작 호랑이? 징그럽다 징그러워...'

잠시 축구협회의 엠블렘 디자인 작업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믿어질 지 모르겠지만 이 한 마리의 호랑이가 태어나서 만인에게 공개되기까지 정확히 3년 반이란 세월이 걸렸다. 3년 반!! 아직까지도 국가대표 축구선수들 가슴팍엔 태극기가 걸려야 제격이란 일부의 목소리도 있지만, 세계적인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엠블렘 작업은 어쩌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아니, 이에 대한 토론은 일단 별개로 삼자. 지난 98년 여름부터 KFA의 공식 유니폼 후원업체인 나이키사에서 엠블렘 작업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수석 디자이너의 세밀한 리서치는 몇 개월동안 진행되었고 한국 축구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정서적인 측면까지 고루 반영되었다는 축협의 엠블렘이 완성 되었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창설된 '1928'년과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 그리고 '태극 문양'을 메인 모티브로 잡은 나름대로 신선한 엠블렘이었다. 필자는 우연한 계기로 그 샘플 시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인상은 다소 부족했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 대한항공의 로고를 연상 시킨다는 이유, 그리고 '개나 소나 전부 태극 문양... 고로 식상하다' 란 이유에서였다.

이듬해에 준비된 제2차 KFA 엠블렘 디자인 과정은 바로 '공모전'이었다. 의장 등록과 같은 법적인 절차에 다소 리스크(risk)가 있는 발상이었지만 여론 수렴과 국민 동참이란 취지를 바탕으로 추진된 작업이었다. 이 역시 결과는...탈락!! 웨일즈의 국기를 표절(?)했다는 시비가 일자 더 이상 추진할 수가 없었다. 그 소식을 듣고 필자는 그런 생각도 했다. '세상에... 표절인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지만, 도대체 그 많은 국기들 중에서 웨일즈 국기를 보고 당선작과 비슷하다는 걸 찾아낸 위인은 또 누군가...? 혹시 공모전 참가자 중에서 탈락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정보를 흘리지 않고서야...' 암튼 공모전은 그렇게 또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이번엔 '대외비'로 엠블렘 작업이 진행되었다. KFA와 관계된 4개 회사에서 각각의 디자인을 제출했다. 어림잡아 700여개의 시안을 검토했다. 여기서 잠깐 KFA의 '고충'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비슷한 디자인 시안 700여개를 검토한다?? 이게 과연 인간의 눈에게 할 짓인가? 결국은 '호랑이' 컨셉으로 좁혀졌고 그 중에서도 호랑이를 활용한 디자인 80여개를 차출, 집중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자, 우리 모두 한번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80마리의 호랑이를 눈 앞에 두고 과연 어떤 호랑이를 잡아야 할지... 대부분의 '좀 한다는' 호랑이들은 너무나도 '안암골 호랑이' 아니면 '무등산 호랑이'를' 연상시키고, 그렇지 않은 호랑이들은 또 '88 올림픽 호돌이'... 한마디로 호랑이 때문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 아니었을까...

이번에 최종 발표된 KFA 공식 엠블렘의 호랑이는 일단 으르렁 거리지 않고 먹이를 향해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는... 물론 한발로는 침착히 공을 차면서 ^^ 그런 호랑이가 선택 되었다. 얼마 전에 필자는 그 '신문로 호랑이'를 실제 제품에 얹혀 놓은 샘플을 볼 기회가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토록 징그럽도록 싫었던 호랑이 엠블렘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 파일이 아닌 정식 패치(Patch)로 입체성 있게 제작되어서 모자 위에 떡~ 허니 올라가 있는데... 멀쩡한 게 보기가 괜찮은 것 아닌가? '이게 그 호랑이 맞냐?' 라고 반문을 안 할 수 없었다.

필자를 포함한 수 많은 '안티 신문로 호랑이' 주의자들이 간과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 '신문로 호랑이'는 현재 대표팀이 착용하는 그 띱디름한 붉은 유니폼 상의에 부착될 호랑이가 아니라는 점... 내년 월드컵에 맞추어 공개될 국가대표팀의 새 유니폼 컬러에 적용될 호랑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그 '신문로 호랑이' 엠블렘이 박힌 대표팀 관련 제품 (유니폼 레플리카, 티셔츠, 모자, 잠바 등)을 우리가 직접 보고 사 입게 되는 날 즈음이면 꽤나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지 더 확실한 점은 '신문로 호랑이'에 대한 여론이 어떻고 반응이 어떠할지언정, 더 이상의 엠블렘 디자인 작업은 없을 것이란 것이다. 당장 인터넷 상에서 보기에 촌스럽기 짝이 없고 군부대 냄새 철철 나는 그 '신문로 호랑이'가 철창을 뛰쳐나와 오프라인에서 만나니까 나름대로 괜찮더라는 소리다. 슬슬 눈에 익혀 두고 아껴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문로 호랑이'는 (비록 그 친구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한 동안 우리 곁에 머무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신문로 호랑이'에 대한 판단은 그 친구가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까지 보류해도 괜찮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엠블렘, 그리고 또 한 마리의 호랑이... 안암골, 무등산과 더불어 이젠 신문로도 호랑이로써 잔뜩 기세를 높일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제공:http://www.hoochoo.com

글:chef@ho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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