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황영조의 풀코스인터뷰]백승일 "누구와 붙어도 자신있어요

  • 입력 2001년 5월 14일 18시 37분


백승일
‘천재 씨름꾼’ 백승일(25·LG투자증권)이 황영조와 만난 것은 봄 햇살이 눈부셨던 13일 오후. 두 스타가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만났을 때 때 마침 일요일을 맞아 이곳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두사람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마른 체구의 황영조와 거구(1m88,147kg)의 백승일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4년7개월 동안의 ‘마음 고생’을 툴툴 털어버린 백승일은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하자 황영조는 “어떤 운동이든 스스로 잘 된다고 생각할 때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운동 선배로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백승일은 “좋은 말을 해줬으니 다음 번에 만나면 형이라고 부르고, 형으로 모시겠다”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황영조:반갑습니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백승일:고맙습니다. 저도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조금 작으시네요. 제가 큰건가요.

황:하하, 그래요? 거제 대회에서 재기에 성공했는데요. 우선 그 동안의 침체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네요.

백:어린 나이에 프로 데뷔해서 93년 한 해를 휩쓸다시피 했죠. 2,3년 잘 하다가 왼쪽 무릎 연골을 다쳤어요. 이태현 선수가 같은 청구팀에 입단했던 것도 그 무렵이고. 태현이와 94년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체중차로 패한 뒤부터 좌절이 있었어요. 씨름 그만둘까도 생각했고….

황: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꼈군요?

백:그 때는 계체 규정이 없을 때였거든요. 제가 처음이었어요. 하여튼 마음을 잡고 씨름판에 다시 들어오기는 했지만 98년 청구 씨름단이 해체되고 여기에 무릎 수술까지 하게 되면서 힘들었죠. 이후에 소속팀이 두 번 더 해체됐었고 신창씨름단과는 계약이 맞지 않아서 7개월 정도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개인운동만 했어요.

황:쉬다보면 운동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백:쉬면서도 ‘씨름’ 이라는 두 글자를 머릿 속에서 지워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안순자 씨)께서 힘을 많이 주셨죠. 어머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거제 대회때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입원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제게 부담이 될까봐 대회 기간 동안 그걸 숨기신 거에요. 집에 전화했을 때도 식구들이 친척집에 갔다고 말을 했었죠. 결국 우승한 뒤에 사실을 알았어요.

황:우승하고는 펑펑 울던데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백: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눈물이 나서…. 그 날은 눈이 부어서 잠도 못잤어요.

황:‘소년 장사’로 처음 천하장사 할 때와 오랜 만에 백두장사에 오를 때의 차이가 있던가요?

백:어릴 때는 무서울 게 없잖아요. 재기했을 때의 기쁨은 처음 우승했을 때보다 몇천배는 더 한 것 같아요.

황:재기에 도움을 준 사람은?

백: 물론 LG 씨름단 이준희 감독님이죠. 다시 해보자고 권유하시고 믿어 주신 분이니까. 그리고 차경만 코치님과 팀 동료들이 고마워요.

황:재기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건가요?

백:팀 해체를 자주 겪다보니까 마음을 잡기가 어려웠죠. LG에 와서 체력을 올리는 과정도 힘들었어요.

황:LG에 입단하고 동계훈련을 하면서 각오가 있었을텐데….

백:재기훈련이 정말 힘들었어요. 진주에서 동계훈련을 하다가는 운동한 이후 처음으로 뛰다가 구토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쉬는 동안 체력이 많이 떨어졌었던거죠. 그저 다시 해보자는 생각으로 뛰었어요.

황:씨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백:지난 거제 시합입니다.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황:언제, 어떻게 씨름을 시작했나요?

백:저는 씨름을 시작한 계기가 재미있어요. 원래 순천 성동 초등학교 3학년때 육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황:육상이라면, 투척?

백:아니요. 단거리. 100m 선수였어요. 그런데, 100m 골인 지점에 씨름 연습장이 있었어요. 저를유심히 지켜보던 씨름부 감독님이 느닷없이 씨름 한 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대로 모래판에 올라가서 씨름선수를 뉘였죠. 그 때부터 육상을 그만두고 씨름을 하게됐어요. 처음엔 몸이 마른 편이었는데 씨름하면서 몸을 불린거죠.

▶백승일(오른쪽)이 운동 선배 황영조와 올림픽공원 잔디밭에서 팔씨름으로 힘을 겨루고 있다.<박경모 기자>

황:이준희 감독이 연습할 때 가장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백:우선 힘을 기르는 겁니다. 중심은 안정된 편이거든요.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했어요.

황:17세 천하장사를 할 때와 지금과는 체중, 기량 차이는 있습니까?

백:17살때는 137kg정도 나갔어요. 지금은 147kg이고. 그 때는 제가 가장 무거웠는데, 지금은 다들 그 만큼은 나가니까 일부러 체중을 늘렸어요. 기량은 변한게 없는 것 같아요.

황:가장 자신있는 기술은?

백:잡치기요. 드는 척 하다가 샅바를 잡아 채서 상대 중심을 무너뜨리는 기술이 장기입니다.

황:껄끄러운 선수를 꼽으면?

백:김경수 선수가 힘들어요. 김영현 이태현 신봉민 선수도 상대하기가 어렵죠.

황:여자친구 있어요? 결혼은요?

백:아직은 없어요. 우선 상대가 생겨야 결혼을 하죠.

황:프로씨름에 처음 뛰어들었을 당시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다른 점이 있을 텐데…. 어떻습니까?

백:선수들의 체격이 많이 좋아졌어요. 씨름의 인기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구요. 제가 우승하면서 씨름판이 ‘춘추전국시대’가 됐다는데 이를 계기로 인기가 다시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황: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백:일단 운동을 열심히 하고 집에서 보내주는 ‘보약’을 먹기도 해요. 씨름이라는게 타고난 기량이 승부의 50%를 좌우하고 훈련량이 30%, 보약 등 평소 몸 관리가 20%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황:각오를 한마디.

백:더 이상의 좌절은 없습니다. 이제 누구와 시합을 해도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꾸준히 성적을 내야죠.

<정리〓주성원기자>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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