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②4-4-2의 성공조건

  • 입력 2001년 5월 15일 18시 02분


4-4-2의 취약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아군의 배후지역이다. 상대 기병들이 자기 최종수비진의 뒤로 돌아가도록 놓아두면 순식간에 아군의 배후가 텅빈 공간이 된다. 이것을 막으려면 양쪽 4명의 아군 기병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양 사이드를 뚫지 못하도록 될 수 있으면 전 선수가 상대 공격수를 압박해 공을 경기장 가운데로 몰아 넣어야 한다. 상대가 공을 잡는 순간 전선수가 수비수가 되어 양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4-4-2에서 수비는 수비수 4명만 하는 게 아니다. 홍콩 칼스버그컵이나 두바이 4개국친선대회에서 한국은 양쪽 사이드백이 번번히 뚫려 공을 쉽게 허용했다. 그만큼 4-4-2에 대한 적응이 어설펐다는 얘기다.

또 있다.4-4-2는 중앙이 두텁지 못하면 허무하게 무너진다. 네덜란드의 98프랑스월드컵대표팀의 중앙수비수는 주장 프랑크 데부르와 1 93의 초대형 수비수 스탐이 떡 버티고 서있고 그 위 중앙 미드필드엔 네덜란드 최고의 스타인 다비즈와 용크가 조자룡과 관우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본 한국축구
①로마군을 무너뜨린 한니발의 기병

③공격이 최선의 수비

4-4-2포메이션의 프랑스가 98프랑스월드컵과 2000유럽컵(UEFA)을 우승한 이면에는 마르셀 드사이-로랑 블랑이라는 뛰어난 센터백 콤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94미국월드컵에서 4-4-2를 들고 나와 무패로 우승한 브라질.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호마리우-베베토 투톱만을 기억한다.그러나 중앙 수비수였던 아우다이르-마르시우 산토스의 철벽같은 명수비가 없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4-4-2를 들고 나와 깜짝 우승한 이탈리아도 마찬가지. 준결승에서 지코 쏘크라테스 등 환상적 멤버를 자랑하던 브라질을 꺾은데 이어 결승전에서 독일마저 누르고 우승한 데는 가에타노 시레아-풀비오 콜로바티의 빗장수비가 결정적이었다. 그들이 뒷문을 꽁꽁 잠가줬기 때문에 로시-알토벨리의 투톱이 번개 같은 역습을 가할수 있었다.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4-4-2중 수비라인인 포백 때문. 완벽에 가까운 플랫 포백시스템을 구사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맨체스터의 수비는 스탐(네덜란드대표)-욘센(노르웨이대표)의 센터백 콤비를 중심으로 필립 네빌-게리네빌(잉글랜드 대표)형제가 좌우 윙백으로 나서 유기적인 협력체제로 거미줄 수비를 펼친다. 마치 아코디언처럼 펼쳐졌다 줄었다 한다. 여기에다 가운데 미드필드진중 좌우 날개도 세계최고다. 왼쪽과 오른쪽 날개엔 긱스(웨일스대표)-베컴(잉글랜드대표)이 환상적인 돌파에 이은 센터링을 해주면 투톱인 요크(트리니다드 토바고대표 175㎝)-콜(잉글랜드 대표 175㎝)이 해결사 역할을 한다.

한국팀 센터백엔 홍명보-이민성이 있고 미드필드 중앙엔 이영표-박지성(유상철)이 있다.

홍명보는 왼쪽 김태영의 자리와 오른쪽 이민성의 자리뿐만 아니라 앞쪽에 있는 이영표의 자리까지도 오가며 톱니바퀴처럼 수비를 해야한다. 이민성도 마찬가지. 아시아최고 수비수라는 평을 받고 있는 홍명보는 세계적인 이들 수비라인과 비교해보면 개인능력이나 협력수비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홍명보는 패싱은 뛰어나지만 순발력이 많이 부족하다.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이 끝난후 차범근감독은 "홍명보는 94년에 비해 체력적으로 많이 달린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한바 있다.스피드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민성은 스피드와 투지는 좋지만 패싱이 안좋다.협력수비에도 문제가 많다. 이들은 이미 프랑스월드컵에서 그 능력이 검증된바 있다. 히딩크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전에서 전반 38분만에 먹은 첫 번째 골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은 홍명보를 비롯 최영일 이민성 등 5명의 수비수들이 골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코쿠 단 1명을 막는데 실패했다. 후반 26분에 터진 베르 캄프의 골도 마찬가지. 골 에어리어 정면에서 볼을 잡은 베르캄프는 이민성을 따돌린데 이어 김태영마저 가볍게 제치고 오른발로 강슛, 네트를 흔들었다.

다섯번째 터진 로날드 데보어의 골도 비슷했다.골에어리어 가운데로 전진패스된 공을 잡은 로날드 데보어는 성급하게 달려드는 이민성과 김도근을 차례로 제친뒤 골문으로 가볍게 찔러 넣었다.

한니발과 로마군이 싸웠던 그 유명한 '칸나에전투'를 통해 축구 4-4-2 포메이션의 이해를 더해보자. 지금부터 2200여년전이지만 당시 전투대형은 오늘날 축구의 포메이션과 너무도 비슷하다. 이중에서도 칸나에 전투는 너무도 유명해서 세계 어느나라 육군사관학교라도 다 가르치는 내용이다. 전투내용은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서 발췌, 재구성했다.

기원전 216년 초여름 이탈리아의 칸나에 평원. 로마군 병력은 모두 8만7200명(보병 8만명 기병 7200명). 카르타고의 한니발군은 총 5만명(보병 4만명에 기병 1만명).보병과 기병의 비율은 로마가 11:1 한니발이 4대1로 한니발이 우세 했지만 보병전력을 비교하면 로마 8만명 한니발 4만명으로 로마가 배나 우세했다.한니발은 당시 31세.

먼저 10㎞의 평야를 사이에 두고 대치가 시작됐다. 처음 두달동안은 작은 충돌이 계속됐다.

로마진영쪽에서 1000여명을 내보내면 한니발진영쪽에서 그정도의 병력을 내보내 전투를 하는 식이었다.여기에선 로마의 우세가 두드러졌다.로마군 사기는 계속 올라갔다. 그동안 계속 한니발에게 당하기만 하던 로마군은 한니발에게 잔뜩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자신감을 얻은 로마군은 진지를 한니발진영 2㎞앞으로 전진배치했다.

그때부터 한니발은 낙심했다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로마가 싸움을 걸어도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소규모 병력도 내보내지 않았다.바로 이것이 한니발의 책략이었다. 가뜩이나 경계심이 많은 로마군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이었던 것이다.그동안 내보내 패배했던 병력도 한니발의 정예부대가 아닌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지방)동맹군이었다.한니발의 정예군은 손톱하나 다치지 않고 건재했던 것이다.

마침내 기원전 216년 8월2일. 동이 트자마자 로마군이 먼저 진을 쳤다. 로마군의 주력은 역시 전통적으로 중무장 보병.로마군 총사령관 바로는 로마군의 강점인 이 중무장보병을 이용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려 했다.그래서 한가운데 경무장보병을 앞세우고 그 뒤에 중무장보병을 배치했다. 병력은 모두 7만명. 그리고 그 뒤에 1만명의 보병을 대기 시켰다. 이것은 중앙 7만명의 경무장 중무장보병이 한니발진영의 중앙돌파에 성공하면 이 대기병력 1만명을 투입하여 승리를 확정지으려는 뜻이었다.그래서 이 보병대의 진영은 자연히 세로가 긴 사각형 즉 두꺼운 형태의 사각형 모양을 띠게 되었다.

한편 기병은 오른쪽에 2400명 왼쪽에 4800명을 배치했다.

◀칸나에전투(포진 직후의 진영).

로마군이 진을 친 것을 본 한니발도 전군을 이끌고 나와 로마군 정면에 진을 쳤다. 한니발은 로마군 경무장 중무장보병 7만명과 맞설 대응군으로 맨앞에 갈리아용병 2만명을 중앙부가 불룩 나오게 활모양으로 포진시켰다.그리고 그 뒤에 자기의 정예중무장보병 2만명을 배치했다. 로마군 오른쪽 2400명 기병과 맞설 왼쪽 기병은 6000명을 배치하고 로마군 왼쪽 기병 4800명에 대응하기 위한 오른쪽 기병은 4000명을 배치했다.

◀칸나에전투(최종 단계의 진영).

맨처음 격돌은 로마군 경무장보병과 활모양으로 진을 치고 있던 한니발의 갈리아용병 사이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수가 많은 로마군이 우세했다. 그러자 로마군은 중무장군까지 투입해 적의 중앙을 돌파하려 했다. 그러자 한니발의 전위부대인 갈리아용병 2만명은 뒤로 후퇴하며 포진을 가운데가 불룩한 활모양에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활모양으로 바꾸었다. 한니발이 블룩한 활모양으로 포진한 것은 로마보병대가 중앙돌파에 되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좌우 양쪽에서는 기병전이 벌어졌다.먼저 한니발 왼쪽 기병은 로마기병에 비해 숫자가 3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세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기병은 뒤로 밀리더니 결국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한니발 오른쪽 기병과 로마군 왼쪽 기병의 싸움은 처음 얼마동안은 대등했으나 승마술이 뛰어난 한니발 기병에 대응하지 못하고 대부분 달아나 버렸다.

이러는 동안 보병들간의 싸움에서는 움푹 들어간 활 모양의 한니발 갈리아용병들이 로마군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좌우로 쪼개졌다. 로마군은 여세를 몰아 물밀듯이 쫓아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눈앞에 느닷없이 한니발의 정예 중무장 보병이 나타났다. 이제 전투는 7만의 로마군 보병과 2만의 한니발 정예군간에 벌어졌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가 많은 로마쪽으로 유리하게 전개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한니발이 노렸던 것이었다. 한니발의 정예부대가 점차 뒤로 밀리면서 로마군의 맹공을 견뎌내고 있는 동안 양쪽으로 갈라졌던 한니발의 갈리아 용병들이 로마군의 양쪽 옆구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곧이어 로마군 뒤에서도 로마의 기병을 섬멸한 한니발의 1만 기병들이 로마군을 사정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로마군은 완전 포위 되었다. 이때부터 전투는 전투라기 보다는 한니발의 섬멸작전이었다. 로마의 집정관 2명이 사망하고 전투에 참전한 로마 원로원 의원 80명이 죽었다.로마 희생자는 7만명. 살아남은 로마 병사는 채 1만명이 안되었다. 승리한 한니발의 전사자는 불과 5500명, 그것도 3분의 2는 갈리아 용병이었다. 한니발군이 로마 전사자로부터 가치있는 물건들을 노획하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어도 다 끝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칸나에전투의 승패는 '기병'이 우수한 한니발의 완승으로 끝났다. 기병이 우세한 한니발이 로마군을 가지고 놀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니발의 정예군들이 중앙을 두텁게 막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4-4-2에서 가운데 중앙미드필더(갈리아용병 2만명)와 가운데 수비진(정예 중무장보병 2만명)이 로마군의 공격진,즉 경중무장보병 7만명의 공격을 시간을 질질 끌면서 막아 주는 동안 한니발의 기병들은 적진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차범근감독이 이끄는 한국팀 을 한마디로 가지고 놀았다. 차감독은 경기전 "서정원 이상윤 등 발빠른 측면 공격수들이 기습 플레이를 펼친 다면 의외의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런 기회는 단 한번도 없었다. 슈팅수 12-27. 그러나 한국의 슈팅 12개중에서 슛같은 슛은 후반 서정원과 교체해 들어간 이동국의 슛등 두 서너개에 불과 했다.코너킥 3-6, 오프사이드 1-5, 반칙 16-11, 경고 2-0 등 한마디로 완패였다. 패장인 차감독은 "오늘 보여준 네덜란드 축구는 너무 좋았다. 이런 경기를 계속 한다면 월드컵우승도 가능하겠다"고 완패를 솔직히 인정했다. 차감독은 "최선을 다했으나 실력차가 너무 커 어쩔수 없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히딩크감독은 훗날 "한국팀의 체력 스피드 정신력은 여느 팀 못지 않았다. 초반 한국팀의 강력한 프레싱과 빠른 움직임에 한순간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분적인 전술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다. 그 허점을 이용해 우리는 대승을 거둘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한마디로 한국의 기병 보병들은 빠르고 용감했지만 유기적인 활동에서는 빵점이었다는 얘기다. 1대1 전투에서는 힘이 넘쳤지만 치고 빠지는 전술적인 면에서는 전무했다고 보면 된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 전반 막판까지 압박했다 풀어줬다를 계속하면서 한국 선수들이 지칠때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관전자들은 이 경기를 어떻게 보았을까. 국제축구협회(FIFA)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왜 무참하게 당했는지 쉽게 알수 있다.

자마전투(포진 직후의 진영).▶

"한국은 몇차례 기습으로 찬스를 만들었지만 네덜란드의 선제득점(38분 코쿠)에 와르르 무너졌다(42분 오베르마르스 71분 베르 캄프 80분 반 호에이동크 83분 R 데부르).한마디로 이때부터 공세를 막기에 급급했다. 한국의 공격은 너무도 단조로웠다. 미드필더들(서정원 김도근 최성용 유상철 최성용)은 네덜란드의 오베르마르스, 용크 , 다비즈, R 데부르와 경쟁이 안됐다. 한국은 3-5-2시스템을 구사했으나 양 윙백(유상철 최성용)들이 수비만 전담하는 바람에 5-3-2로 바뀌었다. 윙백인 유상철과 최성용은 상대의 배후를 기습 공격 하기는 커녕 거의 미드필드를 넘어서지 못했다. 맨투맨 수비도 뚜렷한 목표나 전술능력이 부족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공수전환은 거의 연결이 안됐고 공격라인 구축도 템포가 너무 느렸다. 특히 슈팅 드리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한국은 첫 경기인 멕시코전부터 양 윙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힘이 넘쳤으나 공격의 완급조절과 전술의 다양성이 부족했다. 한국의 기량은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마전투(최종 단계의 진영).▶

한국은 헤딩 정확성이 부족하고 수비수들이 너무 자주 공을 뺐겼다."

한마디로 네덜란드의 빠른 기병들에게 당했다는 말이다. 네덜란드의 왼쪽 미드필더는 육상선수 출신의 오베르마르스다. 1백m를 11초대에 뛸 정도로 빠르다.

한국의 왼쪽 미드필더인 서정원도 1백m를 11초대에 달리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앙미드필더인 다비즈는 또 어떤가. 체격은 1m69에 68㎏으로 작지만 성격이 불같아 '싸움닭'이란 별명이 붙었다. 볼을 빼앗기위해 몸을 던지며 악착같이 달려든다. 히딩크감독은 투지가 좋은 한국에 맞불을 놓기 위해 다비즈를 투입한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한국전은 스피드가 승리의 열쇠다. 양날개인 오베르마르스와 R 데부르(젠덴)는 한국의 양측면을 노리고 기선을 제압하라. 승부는 후반에 갈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히딩크감독의 말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본 한국축구
①로마군을 무너뜨린 한니발의 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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