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보자. 그가 맨 처음 프로 무대에 이름을 올렸던 1997년으로… 당시에 그가 보여 주었던 모습이란 것이, 지금의 물오른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련함과 타고난 감각, 세련미까지 있는 정돈된 기술, 당돌함과 근성… 비록 수비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과 너무 깝죽거린다는(?)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당시에 그가 보여준 축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이 시점에서 한 번 비교를 해 보자. 지금의 고종수가 보여주는 모습이 한결 성숙되고 더욱 다듬어진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재주는 1997년의 고종수와 크게 다르지가 않다. 데뷔 당시에 그가 보여줬던 모습과 거기서 비롯되는 (또는 짐작되었던) 그의 잠재력과 비교했을 때, 지금 그가 보여주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가 않는다. 마치 4년의 기간 중에서 2-3년을 빼 놓은 것처럼, Version 1.0에서 2.0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아닌, 0.9에서 1.0으로의 업그레이드에 4년이 소요된 것처럼...
그 4년 동안 고종수는 자기도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기회와 목적을 상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한 앞으로 그의 인생을 걸고 정렬을 쏟아 부을 대상이 바로 ‘축구’라는 것을 그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축구는 그저 자기가 잘하는 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었고 약간의 노력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 나이에 그 이상의 노력과 투철한 인생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대개 19살, 20살 시기는 끝없는 방황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기인 만큼, 고종수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나이에 프로 무대에서 정상급의 기량을 보여주었으며 리그 우승과 MVP라는 타이틀 까지 차지한, 소위 ‘조기 성공’ 케이스가 아니었던가? 오히려 그런 환경으로 인해 고종수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조차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실상 더 올라 갈 곳도 없었다. 최연소 국가대표, 월드컵 출전, 리그 우승, 리그 MVP… 축구 선수가 평생을 걸쳐 누리기도 힘든 것들을 20살 청년이 다 이루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상당 부분을 ‘노력’ 보다는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고종수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 철학과 목표를 초기에 다부지게 다지지 못한 것을 탓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정도로 치밀하고 어른스러운 고종수였다면, 그의 전매 특허나 다름없는 발랄하고 꾸밈 없는,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몸짓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가 해 주기를 원하고 그를 채찍질 하기는 했지만, 정작 고종수에게 필요한 더 넓은 세상과 도전의 기회를 우리가 제공해 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작은 새장에서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선수임에도 작은 새장 만큼의 공간을 주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삐죽거리면 한 대씩 쥐어 박은 꼴이다. 지금의 안정환, 이동국, 설기현이 뛰고 있는 그 자리에 1997년의 고종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후후… 그러기에는 우리의 역량과 아량이 정말로 후달릴 정도로 따라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고종수 개인 또한 그만큼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고!
19살의 프로 새내기. 그런 선수에게 있어서 처음 3-4년은 매우 중요하다. 그 후 10여년 동안 축구 선수로서 보여 줄 기량의 터전이 사실상 그 시기에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고종수에게는 그 기간이 1997년부터 2000년까지의 4년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난 4년간 그는 프로 팀은 물론 각종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면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가 얼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대형 선수들이 한 번씩 겪어야 하는 시련과 아픔을 극복했는지는 미지수다.
그보다 한 살 아래의 이동국이 지금 독일에서 겪고 있는 시련. 그런 시련을 극복했을 때 이동국은 분명히 한 단계 발전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 올 것이다. 아쉽게도 고종수에게는 지난 몇 년간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단련하지 못한 고종수 개인의 책임도 있겠지만, 19살 청년에게 성장의 기회와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 것이 바로 한국 축구의 현 주소다. 빨리 도달한 선수에게 달콤한 휴식과 인기, 금전적인 보상은 주어지지만 더 높은 지표와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제시해 주지 못한다. 그랬기 때문에 고종수는 지금까지 세계적인 대형 선수로 성장할 시련의 시기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고종수 자신이 그런 시련을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그가 가진 것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연마하고 헤쳐 나가야 할 것을 지적하고 단련시키지 못한 것까지 ‘게으름’이나 ‘싸가지’란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유럽무대와 같은 큰 물로 진출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테면 병역 문제, 리그 수준과 운영, 트레이닝, 재활, 선수 이적 및 계약 시스템, 팬 문화, 언론 등 여러 부분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다. 즉, 재능 있는 선수에게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점검할 수 있는 터전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유망주 해외진출 프로젝트가 유일한 돌파구인 것 같다.)
차범근, 최순호, 고종수… 그들은 모두 나이 스물에 한국 축구를 정복했다(아시아 축구를 정복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무대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인물은 차범근 뿐이었다. 스스로를 더욱 담금질 하는 성실한 노력이 첫번째 이유였다면, 두번째 이유는 또 다른 무대와 도전할 목표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고종수를 보고 있자면 4년 전 느닷없이 등장한 천재의 모습이 오버랩 되고… 또한 축구공으로 당구를 치고 골프를 치던 최순호나 최문식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알에서 깨어나는 고비를 경험하지 못한 천재의 모습 말이다.
이미 한 번의 황금 같은 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고종수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또한 자기가 가진 재능은 물론이고 모든 정렬과 끼를 축구공을 통해서 발산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는 스스로의 몫이다. 나이 스물 셋, 프로 5년차가 된 축구 선수에게 더 이상 어떻게 채찍을 들겠는가? 이번 대륙간 컵 대회가 하나의 고비가 될 수도 있다. ‘기회’라는 말과 ‘고비’라는 말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알에서 깨어난, Version 2.0의 고종수를 기대해 본다.
자료제공 :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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