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20일 오전 8시. 김영찰씨(43·서울 강남구 일원동) 가족은 마치 평일 아침 출근,등교 준비하듯 부산을 떤다.
“엄마, 내 배낭 어디있어?” 둘째딸 해송(10·일원초등교 5학년)이가 도움을 청하자 엄마 유애숙씨(43)는 막내아들 종인이(6)의 옷을 입히며 해송이의 ‘준비 부족’을 나무란다.
‘소풍’에 나서지 않는 큰 딸 해인(16·중대부고 1학년)이만 느긋한 모습.
# 지도 나침반 갖고 나서는 소풍길
김씨 가족이 봉고차편으로 도착한 곳은 서울 구로구 궁동 일명 ‘궁골 약수터’ 입구.
오솔길 앞에 모인 500여명은 모두 ‘국민건강 오리엔티어링대회’에 참가하러 새벽밥 먹고 나온 사람들. 등산을 좋아하는 김영찰씨는 80년대부터 오리엔티어링대회에 참가한 베테랑이다. 부인 유애숙씨도 맨처음엔 멋모르고 남편을 쫓아다니다가 재미를 느껴 일본대회에 혼자 참가할 만큼 오리엔티어링에 푹 빠졌다.
# 아카시아향기 날리는 오솔길에서
가족경기에 참가신청한 김영찰씨는 이날 전적으로 딸 해송이에게 모든 결정권을 줬다. 이날 지도를 보며 찾고 돌아와야하는 포스트는 모두 9개.
출발. 아카시아 향기에 종인이가 “좋은 냄새다”라며 탄성을 지른다. 2개의 포스트를 무난히 찾아낸 해송이가 세 번째 포스트 찾는데 땀을 흘린다.
아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자 봐, 지도가 1만분의 1이지? 그러면 지도에서 1cm는 실제 100m가 되는거야. 하지만 여긴 오르막길이니까 실제로는 더 길어지겠지?”
고개를 끄덕인 해송이가 용케도 실바콤파스(산림용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는다.
# 꼬마 탐험대장 해송이
30분이 채 안돼 포스트를 모두 찾아 돌아왔는데 3등이란다. 아무래도 야산에서 뛰는데는 아버지와 두 고교생으로 구성된 팀을 당할 수 없다.
이제부턴 진짜 소풍. 꿀 같은 도시락 점심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해송이가 “우리한번 더 돌아요”라고 매달린다.
“그래? 그럼 이번엔 반대로 너 혼자 돌아봐라.” 대회 때와는 반대로 9번 포스트부터 다시 나선 해송이는 20여분만에 가족 앞에 나타났다. 혼자 오리엔티어링은 이번이 처음.
아빠와 엄마가 “우리 해송이 최고”하며 박수로 맞이해준다.
오리엔티어링이란…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의 정의는 공식 약칭 ‘OL’의 본디말인 독일어 ‘Der Orientierunglauf’의 뜻을 새겨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방향을 정해(Orientierung) 뛰어가기(Lauf).
숲 등 자연속에서 지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정해진 목표지점을 가장 빠른 시간안에 차례로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초등학교 소풍 때 하던 보물찾기와 흡사하다. 하지만 OL은 단순한 보물찾기는 아니다. 자신이 달릴 지점을 직접 찾아가면서 언덕과 숲길을 달려야하기 때문에 상당한 체력과 민첩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문가들 문제. 매년 스웨덴에서 열리는 세계최대 OL대회인 오링겐대회에서는 나이와 경험도에 따라 남자 41등급,여자 20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자신의 눈높이에 따라 즐겁게 자연을 즐기자는 취지다.
즉 선수가 아닌이상 OL은 가족단위로 소풍삼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
국내에서는 71년부터 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동호인은 1만여명. 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www.kof.or.kr 02-725-0567)이 개최하는 각종대회에 직접 참가하거나 이벤트사 ‘코스피아’(www.kospia21.co.kr 02-3444-7760)가 매월 두 번째주 일요일 개최하는 강습회에서 OL을 배울 수 있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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