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클린턴 전대통령은 이날 괜히 코트에 왔다고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관중석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잘 싸우던 아가시가 갑작스레 무너져 패했기 때문.
올 호주오픈에 이어 메이저 2연승을 노린 아가시는 1만5000여 홈팬의 응원을 등에 업은 그로장에게 1―3(6―1, 1―6, 1―6, 3―6)으로 역전패, 준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아가시가 첫 세트를 단 22분만에 먼저 잡았을 때만 해도 그의 손쉬운 완승이 점쳐졌다. 하지만 클린턴 전대통령이 30초 동안 쏟아진 관중의 기립 박수 환영 속에서 경기장에 나타난 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2, 3세트를 각각 1게임만 따낸 채 무너지며 역전을 허용한 것. 클린턴 전대통령이 4쿼터 시작과 함께 잠시 귀빈석을 뜨자 아가시는 게임스코어 2―0으로 앞서며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클린턴 전대통령이 다시 돌아온 뒤 잇단 더블폴트와 실수로 경기를 망쳤다. 반면 그로장은 포어핸드는 물론 약점으로 지적된 백핸드 스트로크에서도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며 대어를 낚았다.
아가시는 경기 후 클린턴 전대통령이 온 것도 몰랐다고 말했고 그로장은 “클린턴 전대통령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온 뒤 오히려 경기가 잘 풀렸다”고 밝혔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 클린턴 전대통령은 프랑스TV와의 인터뷰에서 “아가시는 내 친구이며 상대 선수가 젊고 너무 빨라 패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우승후보 아가시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일약 개최국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로장은 호주오픈에 이어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 4강에 진출했다. 그로장은 “너무 멋진 순간이었고 모든 사람이 일어나 박수를 쳐 줘 코트를 떠나기 싫었다”고 기뻐했다.
그로장은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3―0(7―5, 6―4, 7―5)으로 완파한 알렉스 코레차(스페인)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