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대전시티즌의 이태호 감독(40)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전문가들이 내놓은 ‘9강1약’의 판도 전망에서 대전을 유일한 ‘1약’으로 평가한 데 대해 씁쓸하기만 하다.
그는 “우리 팀을 강팀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시즌이 끝난 뒤 그 판단이 틀렸음을 꼭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80년대 한국축구의 간판 골게터로 명성을 떨친 이 감독이 ‘만년 꼴찌’ 대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7일 전북 현대모터스와 2001포스코 K리그 개막전에서 4-1 대승을 거둔 것은 결코 이변이 아니었다. 4월 7일 열린 아디다스컵에서도 전북을 연장전 끝에 2-1로 따돌린 바 있고 4월 11일엔 울산 현대를 4-0으로 완파하며 3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비록 막판 뒷심이 달려 B조에서 전북(11)에 승점 1점차로 4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미 대전은 ‘예전의 대전’이 아니다. 이 같은 팀의 대 변신엔 독특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은 이 감독이 있었다.
이 감독은 먼저 모기업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 색다른 동기부여 방법을 찾았다. 팀의 주장을 경기 때마다 바꿔 선수들에게 책임감과 함께 자극제로 삼는 ‘일일 주장제’를 도입해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스타플레이어뿐만 아니라 후보급 선수들도 주장 완장을 채워 내보내는 것.
또 선수들의 플레이가 잘 안 풀릴 땐 하프타임 휴식 때 슬며시 다가가 엉덩이를 톡톡 쳐주며 “괜찮아. 부담 갖지 마”라고 ‘맏형’같이 선수들을 대했다. 구단의 지원이 다른 팀에 비해 적기 때문에 항상 대화와 행동으로 선수들을 다독여야 했는데 그라운드 밖에서는 친구같이 선수들과 어울리는 이 감독의 모습에 선수들이 친형같이 잘 따른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선 ‘호랑이 선생님’이다. 훈련 땐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붙인다. “강해야만 살아남는다”며 선수들이 초주검이 될 때까지 훈련시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머리 염색은 물론 목걸이 착용도 모두 금지시켰다. ‘축구선수는 축구에만 매달려야 진정한 프로’라는 판단에 따른 것. 그라운드에 들어갈 때와 퇴장할 때 90도로 팬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이 감독의 주문.
그의 지도력도 탁월했다. 스트라이커출신답게 팀을 공격축구로 무장시켰고 ‘생각하는 축구’를 유도했다. 또 대전의 문제점이 뒷심이 약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시즌 전엔 웨이트와 서키트 트레이닝, 그리고 러닝으로 체력단련에 힘썼다. 최근 역전패를 잘 당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
그의 선수발굴도 남다르다. 최근 뜨고 있는 정용훈과 박경규 김동선 등이 이 감독이 직접 발굴한 선수들이다.이 감독은 “구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선수들이 너무 잘 따라주고 있다”며 “올해는 꼭 우리 팀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