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하지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이들은 어김없이 한 곳에 모인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지난달 20일에도 이들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내 잔디운동장에 모였다.
이들을 묶는 ‘접착제’는 아직 국내에서는 낮선 ‘라크로스(Lacrosse)’.
헬멧을 쓰고 보호장갑을 끼고 스틱을 들고 경기를 하기 위해 이들이 운동장으로 들어간 지 5분도 안돼 여기저기서 “헉, 헉”하는 가쁜 숨소리가 쉴새없이 터져 나왔다.
간간히 “억”하는 소리도 흘러 나왔고 몇 명은 잔디 위로 나동굴어졌다.
금새라도 몇 명이 운동장밖으로 실려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스틱에 어깨부위를 맞고 치열한 몸싸움에 넘어져도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고 운동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선수교체를 하는 것 이외에는.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던 기자에게 동호회의 총무격인 우충원씨(23)가 “보호장구가 있는 데다 규칙이 엄해 크게 위험하지 않아요”라고 안심시켰다.
지난해 한국체대를 휴학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있는 우씨가 라크로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한 98년.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 온 한 선배가 같이 라크로스를 해보자는 것이 인연을 맺게 된 계기.
2년전 인터넷을 통해 ‘코리안 라크로스 유니언’이라는 지금의 동호회에 가입한 우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가장 열성적인 회원. 대부분이 미국에서 유학중인 회원들은 유학중 학교에서 라크로스를 배운 뒤 방학때 귀국해 인터넷을 보고 이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박진감과 스피드. 우씨를 포함한 회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라크로스의 매력이다. 서로 몸을 부딪치고 상대 수비수를 피해 빠르게 운동장을 휘젖는 묘미가 어떤 다른 스포츠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
정말 그 묘미에 흠뻑 빠져든 듯 이들은 굵어진 빗줄기에도 좀처럼 경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경기 시작 2시간이 지나 입에서 단내를 푹푹 뿜어내고서야 아쉬운 듯 운동장을 빠져 나왔다.
스틱에 맞아 벌겋게 된 어깨부위를 가르키며 “아프지 않냐”고 묻자 몇 명은 오히려 “어디요?”라고 되묻는다. 아픈지도 몰랐던 것이다.
“재미있는 구경하셨어요?” 땀과 비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운동장을 빠져 나가던 회원중 한 명의 질문에 불현 듯 이들의 동호회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떠 있는 ‘너희가 라크로스를 아느냐’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
▼라크로스는…▼
라크로스의 원조는 16세기 미국 인디언이다. 각 부족간에 벌어지던 것이 17세기 들어 프랑스 선교사와 영국 탐험가들에 의해 유럽 등 외부세계로 전파됐다.
가로 100m와 세로 55m인 경기장과 10명이 한 팀인 점은 축구와 비슷한 반면 경기 규칙등은 아이스하키와 닮았다.
15분씩 4쿼터로 진행되는 라크로스는 아이스하키처럼 수시로 선수를 대거 교체할 수 있으며 격렬한 보디 첵이 허용된다. 또 골대 뒤에서도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아이스하키와 다른 점은 스틱으로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채 처럼 생긴 스틱의 주머니안에 공을 넣고 달린다는 것. 또 공을 빼앗기 위해 공을 잡은 선수의 팔부위 등을 상대 수비수들이 스틱으로 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에 선수들은 모두 헬멧과 보호장갑, 어깨보호대, 팔보호대 등을 착용해야만 한다.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은 미국 동부로 대부분의 중고교와 대학에 팀들이 있는 것은 물론 프로리그까지 성행하고 있다.
97년 경희대와 한국체육대에 동아리차원의 팀이 처음 생긴 국내의 경우 아직 걸음마 단계로 실제 경기를 하는 동호인이 현재 100여명정도에 불과하다.
라크로스 동호회인 ‘코리안 라크로스 유니언’(www.freechal.com/lacrosse)에서 배울 수 있으며 장비 구입비용은 30만원선.
<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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