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가 공중 분해하면서 농구·축구·탁구 등 산하 스포츠단이 차례로 뿔뿔이 흩어지더니, 최근에는 스포츠계의 ‘16폭짜리 병풍’인 현대 소속, 그 중에서도 특히 정몽헌(MH) 회장이 이끈 계열사에 속한 많은 경기인들이 그룹 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보따리싸기 바쁜 마당에 무슨 여유가 있다고 공 가지고 노느냐’는 것이 조직 내 대부분의 시각인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구와 여자배구를 제외하고는 성적마저 좋지 않아 바깥의 눈길 또한 곱지 않으니 ‘외우내환’인 셈이다. 그룹 마크를 앞세워 위풍당당하게 경기장에 들어서면 많은 이들의 부러움 섞인 시샘을 사던 예전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이같은 서러움을 톡톡히 겪는 종목이 프로농구와 탁구다. 남자는 최근 현대 걸리버스에서 KCC(금강고려화학) 이지스로 아예 명패를 바꿨다. 여자 현대 하이페리온의 경우, 아직 이름까지는 바꾸지 않았지만 지난 겨울리그부터 금강고려화학의 도움을 받으며 근근히 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이다.
그런데 ‘울고 싶은 데 뺨 때린다’고 여자농구팀은 이제 집까지 비워주게 생겼다. 여자농구팀 숙소와 체육관은 타계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던 서울 청운동 자택과 담을 맞댄 곳에 있다. ‘왕회장’네 동네라고만 얘기해도 주위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듯. 그러나 오는 9월이면 정든 집을 내주고 새 집을 구해야만 한다.
덩달아 현대백화점 여자탁구팀도 피해를 입었다. 여자농구팀과 함께 숙소와 체육관을 나눠 쓰다가 얼떨결에 체육관을 넘기고 지금은 서울 시내 모 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연습중이다. 다행히 숙소는 현대백화점에서 매입해 줘 잠자리는 바뀌지 않았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연습하던 어제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탁구팀의 문규민 감독은 “그나마 농구팀은 시즌중이라 버틸 수 있었지만 우리는 꼼짝없이 체육관에서 나와야만 한다”며 “여자선수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스포츠단의 매각과 해체를 고려해야 하는 대기업의 생리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회사 사정 때문에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짐 싸들고 돌아다니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