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스포츠]'교도소 월드컵'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37분


신문선 해설위원의 마지막 멘트가 뼈아팠다. “결국은 5점까지 주는군요.”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이번에는 체코. 모두 0-5 패배. 아쉬운 한 판이 또 한국축구사에 남게 됐다. ‘사후약방문’ 같은 평가가 뒤를 이었다.

아놀드 하우저에 의하면 이런 경기는 그 자체로 흥미가 없는 경우가 된다. 변증법적 미학이론의 대가이자 열렬한 축구 애호가였던 하우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축구는 변증법이다. 용호상박의 경기다. 그런데 아주 잘하는 팀과 실력이 뒤지는 팀이 붙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그것은 막상막하의 변증법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돌이켜보면 맞는 얘기다. 경기의 의미와 예측 불가능성을 빼고 본다면 네덜란드 프랑스 체코와의 경기는 한 수 아래 ‘지도대국’에 다름아니다. 다른 경우로 보건대 국가대표팀과 고교 최강팀이 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화려한 개인기에 연신 흔들리는 골네트? 그러나 재미가 없다. 밀고 밀리는 다이나미즘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축구란 더욱이 긴장과 충돌의 불확실성에 의해 그 흥미가 배가되는 것이다.

여기 오합지졸의 축구팀이 있다. 물론 영화 속 얘기다. 시작은 제법 거창하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UN 인권위원회는 자유, 평등, 화합의 슬로건 아래 ‘제1회 교도소 월드컵’을 전 세계에 제의한다. 물론 한국에도 교도소가 있으며 그 제안을 받게 된다. 세계 평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UN이 이벤트 하나로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서투르게 제안한 교도소 월드컵 때문에 전국의 교정기관이 혼란에 빠진다. 성의 없는 출전으로 시간이나 떼울 것이냐, 아니면 우승의 영광으로 일계급 특진을 할 것이냐. 문제는 현실. 온갖 잡법, 약골, 불평분자, 마약쟁이를 데리고 일계급 특진을 꿈꾼다는 것은 UN의 제안만큼이나 무모한 배팅. 그리하여 모든 교도소장들이 제발 우리 교도소만은 뽑히지 말기를 기원하는데, 아뿔싸, 비인간적 악한들의 소굴인 한 교도소가 걸려든다. 감형, 일주일 특박, 형집행 정지 등 야무진 꿈을 안고 못난 청춘들이 질주한다. 늦깍이 신예 방성배 감독의 ‘교도소 월드컵’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가설로 정말 말도 안되는 월드컵을 연출한다. 영화의 부분들이 ‘말도 안되는’ 경우가 있어 신경이 쓰이지만 축구 애호가라면 스필버그 영화 다음으로 기대해볼만 하다.

<정윤수·스포츠문화평론가>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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