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어, 이 산이 아닌겨벼"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45분


“어, 이산이 아닌가 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정상에 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목표했던 봉우리가 아닌 엉뚱한 곳이라면 그 심정은 어떨까?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실제로 고산등반에선 흔하다.

지난해 아시아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을 완등했던 엄홍길(42)이 21일 중국 티베트의 시샤팡마 주봉(8027m)에 올랐다. 엄홍길은 이미 93년 9월 시샤팡마 등정에 성공했지만 사진 증빙자료가 명확치 않아 14좌 완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 일부에서 엄씨가 많은 산악인들이 그랬듯이 바로 옆에 있는 중앙봉(8012m)을 오르고 나서 주봉 정상을 밟은 것으로 착각했다고 눈총을 준 탓이다. 엄홍길은 이번 등정으로 ‘그랬을 것’이라는 ‘의심’을 말끔히 털어버리게 됐다.

시샤팡마 때문에 엄홍길만 고생한 게 아니다. 올해 14좌 완등에 성공한 박영석(38)의 회상. “글쎄, 눈보라 속에서 정상에 섰다고 뿌듯해 하고 있는데 옆에 조금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이더라고요, 아차 했지요.” 그는 시샤팡마에 5번 도전만에 주봉을 밟았다.

이 정도는 오히려 애교에 속한다. 올 봄 국내 한 산악회는 티베트의 잘라송구봉(7050m)을 세계 최초로 올랐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산악회가 오른 산은 16㎞나 떨어진 곳에 있는 초모구두봉(5680m). 처음부터 티베트등산협회가 잘못된 자료를 제공하는 바람에 엉뚱한 산에 올랐던 것이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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