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의 풀코스 인터뷰]김택수 "11점제 내 스타일에 딱"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47분


김택수(왼쪽)가 옆에서 장난스럽게 탁구공을 튕겨보이는 황영조를 보며 미소짓고있다.
김택수(왼쪽)가 옆에서 장난스럽게 탁구공을 튕겨보이는 황영조를 보며 미소짓고있다.
스포츠에서 한 선수가 10년 넘게 정상에 머문다는 것은 종목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다. 한국탁구의 간판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김택수(31·담배인삼공사)는 그런 면에서 ‘보기 드문’ 선수다.

김택수는 90년대 초반부터 유남규(현 삼다수코치)와 함께 한국 탁구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활약해왔고, 유남규의 은퇴 이후에도 국내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서는 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단식 우승을 제외하고는 94년 카타르 오픈 우승 이후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았던 것도 사실. 김택수의 코리아 오픈 우승은 새롭게 전개되는 ‘11점제’에서 한국 탁구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황영조는 지난해 김택수의 결혼식 사회를 봤을 정도로 그와는 절친한 사이. 나이는 같지만 생일이 빠른 김택수가 한 해 먼저 학교에 들어가 선배 대접을 받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편한 분위기의 대화가 이어졌다.

황영조:먼저 우승 축하해. 나도 코리아오픈 경기장에 가봤는데, 부인(전 양궁 국가대표 김조순)이 만삭의 몸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던데….

▽만삭 아내의 응원 큰힘

김택수:고마워. 이미 출산 예정일이 지났을 때였는데 굳이 온다고 하더라구. 큰 힘이 됐다고 해야겠지. 이틀 후에 딸을 낳았어. 아기한테는 큰 선물이 될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더군.

황:11점제 탁구가 국제 대회로는 처음인 것 같던데, 어때?

김:21점 경기에 비해서 변수가 많아. 초반에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긴장감은 전보다 더 한 것 같구.

황:본인에게는 도움이 되는지?

김:빠른 승부가 난다는 점이 내 스타일과는 맞는 것 같아.

황:다른 한국 선수들에게도 유리할까?

김:11점제가 되면서 중국 선수들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어. 우리가 중국을 잡을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봐야지. 하지만 우리보다 약했던 선수들에게 잡힐 가능성도 높아졌으니 조심해야겠지.

황:담배인삼공사에서 직책은 어떻게 되지? 일본에서도 뛰는 것으로 아는데.

김:직책은 과장급이야. 일본에서는 회사 차원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일본 프로 대회에서 뛰는 거지. 대회 스폰서와 계약하고 시합에서 이길 경우엔 승리 수당을 받아. 물론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담배인삼공사 유니폼을 입고 모두 출전하고. 일본 투어는 유럽에서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봐.

황:언제까지 일본 투어에 참가할 생각이야?

김:3년 정도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황:만 31세라는 나이가 운동하는데 부담되지는 않아?

▽앞으로 3년은 더 뛸수있어

김:나는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뛰는데 문제 없거든. 오히려 주위에서 이제 노장아니냐고 하는거지. 내가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오랫동안 뛴다면 후배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모범이 되지 않을까?

황:이대로라면 내년 부산 아시아경기에 나가서 우승하는 것도 문제 없겠군.

김:아시아경기는 세계선수권과 마찬가지로 힘든 대회야.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기 때문인데…. 선수가 경기가 어렵다고 미리 포기한다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 내년까지 현재의 몸 상태를 유지해서 중국의 벽을 꼭 넘고싶어. 아시아경기 단식 2연패는 물론이고 복식, 단체전에서도 우승하고 싶은게 벌써부터의 욕심이지.

황:지난해 양궁 스타인 김조순씨와 결혼으로 화제가 됐었는데. 어때, 결혼하니까 운동에 도움이 되나?

김:원래 보약을 안먹었는데, 결혼한 뒤로는 두번이나 보약을 먹었어. 아무래도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집에 오면 신경 써주고 싶나봐. 여러모로 안정이 되니까 맘이 편하지.

황:딸을 탁구 선수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있는지….

▽딸도 탁구선수로 키우고 싶어

김: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마음이 있어. 내가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탁구라는 운동은 정말 좋은 운동이야.

황:김수녕 선수나 김경욱 선수나, 요즘 주부 양궁 선수들의 복귀가 많은데, 아내가 다시 활을 잡겠다면 어떻게 할거야?

김:하고 싶다면 해야지. 본인도 가끔 선수는 아니더라도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할 때가 있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게 가장 좋은거지.

황:여지껏 탁구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어떤 일들이 있을까?

김:그저 경기에서 이기는 순간이 기쁜 순간이고, 지는 순간이 아쉬운 순간 아니겠어? 95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에서 규정에 맞지 않는 고무풀 사용으로 실격당한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인데.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아. 후회를 하면 매사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

황:계속 정상권에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남은 목표가 있다면 뭘까?

김:탁구를 그만두는 날까지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듣는게 목표야. 경기에는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으로 좋겠지. 물론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한다는 ‘멋있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말야.

<정리〓주성원기자>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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