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이 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을 한 번 살펴보자. 축구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축구가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경기 규칙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통일된 경기 규칙이 널리 적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한 나라의 축구 환경과 관리 체계에 기여하는 부분도 크다. 대회 규모와 참가 팀, 참가 자격, 대진 방식과 운영 등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나라 축구협회를 정점으로 하는 하부 구조가 튼튼해지고 체계화 된다는 것이다. 전국의 아마추어 팀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만큼 각 지역별 관리 체계가 확립되며, 참가하는 팀들은 축구 협회 및 산하 기관에 등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대회를 통해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국의 아마추어 팀들은 점차 클럽화 된다. 지금처럼 이름도 모르고 그 규모조차 파악이 불가능한 전국 각지의 조기축구 모임과 동호인 모임 등이 차츰 대한 축구협회의 관리구조 내에 편입될 것이며, 또한 각 팀들은 스스로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참가자들은 동호회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차 아마추어 선수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그 나라 축구의 토대를 튼튼히 함은 물론이고 축구 저변과 수준을 향상시키게 된다.
FA컵은 그저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대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축구 역사를 통해서 이처럼 지대한 공헌을 한 대회이며, 이러한 사실은 축구 종주국인 영국 축구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영국 축구는 FA컵을 통해서 체계적인 경기규칙을 마련했으며 일부 귀족 중심의 스포츠이던 축구를 지방의 노동자 계층이 주인이 되는 최대의 민중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선수층이 확대되면서 빠른 속도로 경기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FA컵은 작은 월드컵과 다르지 않다. 월드컵 지역 예선을 통해 지구촌의 모든 FIFA 가맹국들이 FIFA의 행정력 속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축구 약소국에게도 참가의 기회가 주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월드컵을 통해서 축구는 더 많은 곳으로 퍼져 나갔으며, 전 세계적으로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FA컵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은 월드컵의 탄생 없이 세계 축구가 움직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월드컵이 없는 축구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 제대로 된 지역 예선도 없이, 또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참가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그저 잘 나가는 몇몇 빠방한 나라들끼리 월드컵을 치른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지금과 같은 축구의 발전과 인기가 가능했을까?
이번 FA컵은 과거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아마추어 팀들의 참가 기회가 많이 확대되었다. 작년에는 실업 6팀, 대학 6팀, 그리고 고교 2팀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졌는데, 올해에는 참가 팀의 폭이 더욱 확대 되었다. 대학 팀의 참가 규모가 20개 팀으로 늘었으며 생활체육축구연합회, 즉 일반 동호인이나 지역 클럽 7개 팀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고교 팀은 제외되었다). 또한 대회 진행 방식도 2회전으로 나누어서 치러진다. 실업 팀과 생활체육축구연합회 소식 팀들이 먼저 1회전을 치른 후, 살아 남은 팀들이 2회전에서 프로 팀들과 격돌을 하게 된다. 대회 기간도 약 2개월 동안 진행되며 작년에 비하면 훨씬 그럴싸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재미 있는 부분은 생활체육축구연합회 소속 팀들이다. 솔직히 이 팀들은 수준 있는 지방 조기회 내지는 지역 조기회 대표팀 성격이 강하다. FA컵이 아니었다면 그냥 그렇게 생활체육축구연합회 규모의 대회에서 자웅을 겨루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FA컵에 참가를 하게 됨으로써 생활체육 팀들도 축구협회에 등록된 정식 팀들과 다름 없이 점차 공식화 될 것이며, FA컵에 대한 관심과 규모에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다. 동호인 축구, 생활 축구가 제도권(?) 축구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각 팀들은 스스로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기반의 클럽들이 활기를 띄게 될 것이다.
이번 FA컵 대회에 참가하는 생활체육축구연합회 소속 팀에는 마산, 울산, 포항, 광주의 생활체육 클럽 팀과 울산 세종공업, 삼성전자, 그리고 푸티 리그 우승 팀인 삼익악기 팀이 있다. 참가 선수들 중에는 왕년에 프로 축구에서 한 가락 했던 선수들도 끼어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괜히 비아냥 거리며 흠집을 잡을 필요는 없다. 프로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생활체육 팀이나 기타 아마추어 팀, 또는 프로 하부리그 팀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하는 예는 외국에도 수 없이 많다. 세계적인 명문 클럽에서 뛰었던,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유명 스타가 은퇴 후에 작은 클럽 팀의 감독 겸 선수로 뛰면서 팀을 이끌기도 하며,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최소한 그 선수 자신이 축구를 계속 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그는 선수로 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FA컵 대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다소 머리가 벗겨진 모습으로, 또는 배가 살짝 나온 아저씨의 모습으로…
일단 이번 2001 FA컵 대회를 통해서 하나의 전례가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하다. 여전히 참가팀 및 자격, 예선 라운드 방식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며, 생활체육 팀들을 어떤 식으로 제도권 안으로 끌어 안을 것인가의 문제도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 사실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생활체육 팀들이 FA컵에 참가하는 것은 얼마나 골 때리는 넌센스인가?
또한 FA컵 대회의 본래 취지대로 ‘협회 산하의 모든 팀들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는 명제에 충실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 협회는 FA컵을 통해 꾸준히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하며, 이러한 노력은 자연스럽게 학원축구를 위주로 하는 현재의 기반 구조를 지역기반, 클럽기반 구조로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다. 생활체육 팀이 동호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진짜 축구 선수들이 뛰는 ‘정식 축구팀’으로 발전하고 프로나 실업 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소속 팀 구실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그만큼 축구의 뿌리는 깊고 강해질 것이다.
변화의 기치를 올리기는 했지만 올해의 FA컵이 어떤 모습으로 끝이 날지는 모르겠다. 그저 거창하게 시작해서 초라한 모습으로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대회를 위한 대회에 그치고 팬들의 관심을 끌어 오지 못한 채 졸속적으로 대회 규모만 늘였다는 혹평을 들을 수도 있다. 또한 생활체육축구연합회 소속 팀들의 참가 자격과 선정 방식을 두고 입방아에 시달릴 수도 있다. 대회 운영이 어쨌다는 둥 시기와 기간이 어쨌다는 둥…
설사 성공적으로 마감을 하더라도 앞으로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축구협회의 행정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특히 각 지역별 협회 지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며 지역별 대회나 리그에도 손을 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모든 일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도 미지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한국 축구는 그만큼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불세출의 스타나 지도자에 의한, 아니면 행정가가 정치인의 파워에 의한 한국 축구의 발전이 아니라, 모두의 힘에 의해서 한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축구의 저변을 정비하고 클럽 축구를 육성하는 일은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거나 거창한 마스터 플랜을 내세우기 전에, FA컵 대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 만으로도 우리 축구는 기반은 더욱 탄탄해 질 것이다. 프로 리그가 ‘보는 축구’라면 FA컵 대회는 ‘참가하는 축구’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과연… ‘후추 축구 클럽’이 FA컵에 등장하는 날도 올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dyseo@nethru.co.kr
[제공:후추닷컴 http://www.ho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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