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홍원기에 울고 웃고…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35분


홍원기
천당과 지옥은 그리 멀지 않았다.

프로야구 두산의 김인식 감독은 요즘 내야수 홍원기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하다. 김 감독은 12일 현대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한 뒤 “홍원기 때문에 경기를 망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3일 2차전에서 이기고 나서는 “홍원기가 크게 한건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

친정팀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둘러 최우수선수에 오른 홍원기는 부푼 꿈을 품고 출전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빠뜨리는 어이없는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고개를 푹 숙인 홍원기는 동료의 위로를 받으며 쓸쓸하게 운동장을 떠났다.

그는 1차전을 치른 날 잠을 제대로 못 이룬 채 2차전에서 명예회복을 별렀으나 좀처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수비에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힘차게 휘두른 방망이는 허공만 가르기 일쑤였다. “너무 잘하려다보니 힘만 잔뜩 들어가 공수 뭐하나 제대로 안됐어요.”

7회 무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나서 뭔가 해보려 했으나 가차없이 번트 사인이 내려졌다. 몸이 굳어진 탓이었을까. 2차례 번트 시도가 잇달아 실패로 돌아갔고 1차전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 홍원기는 현대 투수 김수경의 5구째를 받아쳐 승리를 굳히는 2점짜리 아치를 그렸다. “이젠 모든 게 끝이라고 체념했는데 작전 실패가 운으로 따랐다”는 게 홍원기의 소감.

주전 김민호의 부상에 따라 주전으로 전격 발탁된 홍원기는 포스트시즌 최고의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팀을 울렸다 웃겼다 하고 있는 그는 정규시즌 동안 수원구장에서 단 한차례도 뛴 적이 없어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반면 3차전부터 나머지 경기를 치르는 잠실에서 현대와 싸울 때는 단 1개의 에러도 없어 자신에 넘쳐 있다.

하루 사이에 역적과 영웅을 오간 홍원기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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