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야구장은 터져 나간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요즘 잠실경기장 암표는 8배를 줘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싱거워 보이는 야구에 사람들이 이토록 빠져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마니아들은 ‘의외성’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특히 순식간에 승패가 뒤집히는 스릴은 야구 아니면 없다고들 한다. ‘한방’, 그 중에서도 주자가 꽉 찼을 때 터지는 만루홈런이 바로 그것이다. 홈런이 야구의 ‘꽃’이라면 만루홈런은 ‘꽃 중의 꽃’이다.
▷만루홈런 주인공이 털어놓는 ‘느낌’은 대개 비슷하다. ‘공이 수박만큼 커 보였다’ ‘노리고 있었다’ 등이 단골 메뉴. 공이 투수 손을 떠나 타자 앞까지 오는 데 단 0.45초,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공을 보고 노려 방망이를 휘두르는지 신기할 정도다. 반대로 투수는 죽을 맛이 따로 없다. 잘 던지다가 갑자기 자제력을 잃는 게 대개 한방을 맞은 다음이다. LA다저스 박찬호 선수도 2년 전 만루홈런을 맞고 나서 상대팀 선수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다 퇴장당했다. 도대체 얼마나 열을 받았으면 그랬을까.
▷우리 프로야구에서 빛나는 두 개의 만루홈런은 모두 출범 첫해인 1982년에 나왔다. 개막경기 연장 10회말 MBC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은 OB 김유동의 만루홈런이 그것이다. 두 경기 모두 삼성 투수 이선희가 맞았으니 그런 불운이 없다. 그저께 두산 김동주가 19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 만루홈런을 터뜨려 화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상대팀 삼성 투수코치가 바로 이선희다. 야구장에서나 있을 수 있는 기연(奇緣)일 게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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