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하게 '단땀' 흘려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겠습니다."
열일곱살이던 지난 98년, 한국오픈에서 아마추어 최초이자 최연소 우승의 기록을 세워 골프계의 주목을 받았던 김대섭(20·성균관대2) 그가 한국 골프 차세대 대표주자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점검해 봤다.
지금의 김대섭이 있게 한 장본인은 누구인가?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김대섭 선수가 쟁쟁한 프로들을 물리치고 한국오픈 두 번째 정상에 섰을 때조차 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았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김 선수는 서운하지 않았다.
"늘 말이 없으세요. 간섭도, 강요도 없어요. 그저 지켜볼 뿐이에요." 아버지는 지금의 김 선수가 있게 한 장본인이다. 골프장 보수일을 하던 아버지 때문에 제주 오라C.C를 드나들던 것이 계기가 되어 골프채를 잡게 되었다. 골프에 소질을 보였던 김 선수는 한연희 프로의 권유에 따라 골프계 입문을 서둘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침묵을 고수했다. 완강한 침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김 선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아버지는 20만원을 들여 장만한 중고 골프채를 말없이 김 선수에게 건넸다.
아버지의 침묵이 김선수에겐 오히려 힘이 되었던 것일까. 골프채를 잡은 지 2년 만인 중3때 엘로드배 남중부 우승을 차지했고 서라벌고등학교로 스카우트가 되었다. 부모님이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했고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려가며 뒷바라지에 나섰다."공이 잘 맞는 날 입었던 바지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갈아입지 않는데 그걸 아는 아버지가 다리미 까지 챙겨들고 오세요. 말없이 제 바지를 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힘을 얻어요."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없이 말했다. 그 침묵 뒤에 자리한 폭 깊은 사랑을 김 선수는 헤아릴 수 있었다. 보답하는 길은 하나였다. 손에 피가 맺히도록, 발바닥에 물집이 터지도록, 공을 치고 런닝을 했다.
땀의 대가는 달디단 열매로 돌아왔다.98년 한국오픈 우승, 99년 일본 기린 오픈2위, 송암배아마추어선수권 3연패 등 달디단 열매로 김선수는 아버지께 보답했다.
지혜,겸손,용기,그리고 인성
하지만 김대섭 선수는 현재의 달디단 열매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큰 열매를 맺기위해 '단땀'을 흘리고 있다. 장점을 최대화 시키고 단점을 최소화 시키는 훈련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체구는 왜소해도 지구력과 퍼팅에 자신있어요. 집중력이 좋은 편이죠. 제가 원래 성격이 예민해서 잠도 잘 깨고 음식도 가리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성격이 대회 때는 집중력으로 변해요."
김 선수는 수줍게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 자평하다가 자신의 단점을 얘기할 때는 칼날 같은 태도로 돌변해 "부족한 롱아이언샷 과 평균 270야드의 비거리를 더 늘리기 위해 훈련에 빠지겠다"라는 말을 전했다.
김 선수는 한국오픈 우승소감에서 프로전향을 선언한 바 있다. 한때 병역면제 혜택이 걸린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삼아 다시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지만 결국 프로행을 택했다. 자신이 택한 길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그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사실 무서워요. 겁나요. 장난 아니죠.(웃음)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있어요. 예전부터 생각해 온 걸 실천하는 건데요 뭐. 주변 사람들 말씀을 하나씩 가슴속에 담아 두고 있어요. 살아남으려면……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겠죠."
최고의 자리에 선 골프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호쾌한 장타, 정교한 아이언샷, 대담한퍼팅, 위기관리능력, 체력, 타고난 자질, 피나는 훈련 ….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김대섭 선수는 말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김 선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깊고 넓은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와 주변 사람들의 충고와 질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겸손, 그리고 자신의 길을 수수로 선택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는 김대섭! 그가 한국 골프 차세대 대표주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의 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의 인성에 한국 골프의 미래를 맡겨보자.
(자료제공 : http://www.thegol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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