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3-4-3 담금질’ 한국축구 16강 가자!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6시 32분


젊은 선수 주축 ‘베스트 11’ 윤곽 … 조직력 극대화 반복훈련만이 나아갈 길

크로아티아와의 1차전에서 거둔 2대 0의 시원한 승리. 한겹 부담을 덜어서였을까. 경기 다음날인 11월11일 한국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은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과 대표팀이 처한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네덜란드식 축구를 적용하려다 시행착오가 많았고 그 때문에 겪은 마음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앞으로도 이런 시행착오는 더 있을 것이다.”

그가 적용하려 했다는 네덜란드식 축구는 무엇이고 시행착오는 또 무엇 때문이었을까. 역설적으로 이 두 가지 질문은 “히딩크 감독이 앞으로 어떤 형태의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갈 것인가”는 의문을 위한 키워드들이다. 과연 히딩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2002 한국축구 대표팀’은 어떤 모습이며, 11월 초의 A매치 세 경기는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축구의 전체적인 틀을 잡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수비 라인. 히딩크 감독이 아약스나 아인트호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추구하던 축구는 전형적인 4-4-2 전술의 포백 시스템.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이 사용한 시스템 역시 포백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히딩크는 호베르토 카를로스, 카푸 등 브라질 대표 출신의 걸출한 선수들을 측면으로 내세워 강력한 공격축구를 선보일 수 있었다.

이런 화끈한 공격축구가 가능했던 것은 측면 수비수들의 백업 능력이 뛰어나고 체력이 완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중앙 수비수의 완벽에 가까운 수비력이 밑받침되었다. 포백을 운용하기 위한 핵심 전제조건이 ‘강력한 수비수 확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올 시즌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성남 일화 역시 김현수-김영철로 이어지는 탄탄한 중앙 수비가 있었기에 양 측면 수비수들을 걱정 없이 최전방 공격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제무대에서 세계적인 이름값을 지닌 상대 공격수와의 맨투맨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한국 수비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뛰어난 수비수를 찾아 헤매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히딩크는 결국 포백 대신 일자 스리백 시스템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8일 세네갈전과 11일 크로아티아전에서의 실험 결과 상당부분 합격 판정을 받았다.

스리백 시스템 상당부분 합격

그동안 히딩크 감독은 “상대팀의 공격 진영 배치에 따라 포백과 스리백 등 전술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내 스타일”이라고 밝히곤 했지만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표팀의 수비대형이 일자 스리백으로 완전히 굳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술적인 소화력이나 개인기가 떨어지는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시스템을 바꾸어가며 경기를 진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이 포백 대신 스리백을 확신하게 된 이유는 대표팀을 10년간 장악했던 ‘홍명보 시스템’을 깰 수 있는 송종국의 존재가 확인되면서부터다. 대표팀은 현재 32세인 홍명보에게 너무나 많이 의존해 왔다. 홍명보의 패싱력과 경기를 읽는 눈, 완급 조절 등의 장점은 여전히 빛나지만 수비력에서의 한계는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또한 최근 들어 급격히 눈에 띄는 체력 저하 역시 세대교체론의 강력한 논거로 작용했다.

히딩크 감독은 그동안 오른쪽 윙이나 윙백, 측면 수비수로 포진시켰던 송종국을 지난 9월 나이지리아와의 2차전부터 일자 스리백의 중앙 수비요원으로 돌리는 실험적인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이러한 모험이 A학점을 받은 것은 11일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노련미는 떨어지지만 스피드와 백업 능력, 지능적인 플레이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한 송종국이 충분히 중앙 통제 역할을 해내면서, 히딩크 사단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유럽팀을 격파하는 흥분을 맛보았다.

스리백 시스템의 안정감이 예상보다 빨리 정착되고 있어 빅 게임에서 한국팀이 느껴온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기대어린 전망이다. 그러나 히딩크의 고민은 단지 수비에만 있지 않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초기 “등뼈(spine)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중심축인 중앙 미드필더를 튼실하게 키워야 경기의 맥을 풀 수 있다는 논리였다.

3-4-3을 기본전술로 키워가면서 히딩크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밑 꼭지점으로 왼쪽에 이을용, 오른쪽에 최성용이나 최태욱을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을 그려냈다. 하지만 히딩크가 원하는 것은 삼각형이 아닌 다이아몬드 대형. 정작 중원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다이몬드 대형의 꼭지점을 이끌 맨 위쪽의 정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였던 것이다.

‘톱니바퀴’ 호흡 아직은 미완성

히딩크는 네덜란드 대표팀 시절 베르캄프와 다비즈를 중원의 상하로 포진시킨 후 강력한 스피드를 가진 오베르마르스(왼쪽)와 로널드 데부르(오른쪽)로 강철 같은 다이아몬드 대형을 유지, 측면 공격에 이은 득점 외에도 강력한 중앙 돌파와 중앙 수비를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대표팀엔 이런 대형을 완성시켜 줄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스트라이커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에서 히딩크가 클래식한 의미의 ‘게임 메이커’를 쓰지 않은 이유는 그럴 만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정환, 고종수, 황선홍, 이천수 등 많은 선수들이 실험무대에 올랐지만 모두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히딩크 감독이 “내가 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가 있으면 중앙 게임 메이커를 마다하겠는가”고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한 것도 다이아몬드의 윗 꼭지점을 맡아줄 선수가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히딩크 대표팀이 이전 대표팀과 과정은 다르지만 전통적인 측면 센터링에 이은 득점 등 비슷한 공격 루트를 보이고 있는 것 역시 본질적으로 이런 한계에서 비롯된다.

크로아티아와의 1차전을 관람한 외신기자들이 “안정환이 다비즈처럼 파워 넘치는 선수였으면 좋았을 것”이란 질문을 던지자 히딩크 감독은 “힘이나 파괴력은 다비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지만 기술과 재치 등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살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전술 운영의 어려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등뼈가 부실하다 보니 공격수들에게 더욱 강력한 압박수비를 주문하게 됐지만, 수비의 기본을 배우지 못한 우리 포워드들에겐 아직 상당히 버거운 일이다.

히딩크는 11월 치러진 A매치 세 게임을 통해 3-4-3에 대해 상당부분 확신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 아직 강한 고리로 연결된 ‘완성된’ 구조물은 아니다. 강팀을 만나면 언제라도 다시 ‘오대영’(5대 0)이란 닉네임을 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선수’다. 이제 거의 90% 이상 확정된 베스트 11을 대상으로 월드컵 본선 전까지 꾸준하고 충분한 담금질을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크로아티아와의 1차전 후 히딩크 감독은 “스피드는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연습으로 개선할 수 없지만 체력이나 전술적인 소화, 개인기는 꾸준한 반복을 통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200여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의 해법은 피나는 시스템 훈련과 반복적인 세트플레이 등을 통한 조직력 극대화뿐. ‘히딩크식 16강 해법’의 방향은 대략 윤곽을 드러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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