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좋은 포인트 가드가 팀에 미치는 영향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0시 52분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심야 시간에 방영해주던 NBA 프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방송을 통해 질리도록 들었을 법한 농구 명언(?) 하나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걸로 안다.

'가드는 팬들을 즐겁게 하고, 센터는 감독을 즐겁게 한다.'

오늘은 팬들을 즐겁게 한다는 가드, 특히 그 중에서도 1번 포지션이라 불리 는 포인트 가드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가볼까 한다.

현재의 포인트 가드들은 ‘포인트 가드’하면 떠오르는 일반적 개념 - 패싱 게임을 이끌어나가면서 볼의 원활한 움직임을 리드하고, 세트 플레이를 지정하여 선수들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 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전적 개념의 포인트 가드들로 현재 John Stockton, Jason Kidd, Andre Miller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현재는 다소 변형된 개념의 포인트 가드들이 득세하고 있다. 이러한 선수들은 슈팅 가드의 역할을 수행해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올랜도 매직 시절의 Penny Hardaway나 Gary Payton, Mark Jackson 등은 포인트 가드의 포스트업이 하나의 공격 옵션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Steve Francis, Stephon Marbury, Nick van Exel 등은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도 '저 선수 슈팅 가드 아냐?'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할 때가 많은, 인정 받고 있는 스코어러들이다. 그 외 스코어러의 역할에 전념하기 위해 아예 슈팅 가드로 전업한 Allen Iverson 이나 Jason Terry 같은 경우도 있다.

Iverson이나 Terry의 상황, 그리고 'Phil Jackson System' 등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팀의 감독들은 소속팀의 포인트 가드들이 고전적인 임무를 해 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막판 몇 초, 몇 분을 남겨두고 승패가 갈리는 접전일 경우 감독들의 바램은 더더욱 증가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코트에 나가 일일이 지도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확률높은 농구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확실한 센터-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들이 감독을 즐겁게 해준다는 건 맞는 얘기인데, 포인트 가드의 임무 수행 여부가 감독을 웃고 울리는 직접적인 요소가 될 경우가 타 포지션에 비해 유독 많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감독들은 센터 못지 않게 좋은 포인트 가드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오늘은 좋은 포인트 가드가 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해볼텐데, 재미있게도 최근 개막한 세 개의 농구 리그에서 이와 연관된, 그리고 서로가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었다.

1. 지난 시즌, NCAA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했던 애리조나는 올해 NBA 드래프트에서 네 명의 지난 시즌 주전 멤버가 프로로 진출해버리는 바람에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던 팀이었고, 'AP Preseason Top 25 Poll'에 진입하지 못하는 처량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리조나의 초반 러쉬는 메가톤급 임팩트를 리그에 선사했다. Coaches vs. Cancer Classic을 통해 Top 10 팀, 매릴랜드와 시즌 첫 경기를 가졌던 애리조나는 71-67로 승리했고, 두 번째 경기였던 플로리다와의 경기에서도 75-71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플로리다 역시 올 시즌 확고한 Preseason Top 10 팀이었던 점에서 놀라움은 두 배가 된다. 여기에 애리조나는 또 하나의 Top 25 팀인 텍사스를 상대로 88-74의 대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놀라운 애리조나의 초반 러쉬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두 Top 10 팀과 하나의 Top 20 팀들을 상대로도 계속될 수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경기 만으로도 애리조나의 포인트 가드 Jason Gardner의 위력을 설명하기에는 딱히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지난 시즌 주전 5명 가운데 유일하게 팀에 잔류한 5-10 짜리 3학년 가드 Gardner 는 사실 올해 NBA 드래프트에 도전했다가 드래프트 철회 기간에 맞춰 대학으로 다시 돌아온 케이스. 이 베테랑 포인트 가드는 현재 애리조나의 알파와 오메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무려 6명의 1학년, 그리고 그 중 두 명이 주전으로 나서는 애리조나의 리더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데, 아마도 지난 시즌 토너먼트 결승까지 팀을 이끌고 갔던 노하우가 발휘되는 모양이다.

Gardner는 매릴랜드와의 일전에서 승부를 뒤바꿔버린 4점 플레이를 성공시켰고, 플로리다와의 경기에선 막판 두 번의 결정적인 패스를 성공시키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Gardner의 안정된 경기 운영은 클러치 타임에서도 전국 최고 레벨의 강호들에게 밀리지 않을 전력을 팀에 제공해주었다. Gardner의 활약에 힘입어 애리조나는 Coaches vs. Cancer Classic에서 승리했고, Gardner는 토니 MVP가 되었다. 덕분에 애리조나는 AP Top 25 Poll에 8위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애리조나의 Lute Olson 코치 역시 Gardner의 놀라운 활약에 크게 감명 받은 모양이다. 그는 Gardner의 리더쉽이 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애리조나는 그의 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 '뉴욕 근교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농구팀'은 어디인가? 당근 뉴욕 닉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문장에 조금 변형을 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뉴욕 닉스였다고...

이는 최근 많은 칼럼리스트들이 남발(?)하다시피 애용하는 문구이다. 바로 뉴저지 네츠의 놀라운 초반 러쉬 때문인데, 이는 한 마디로 NBA 특급 포인트 가드 Jason Kidd 효과라고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건강'인데, 네츠가 핵심 5인방으로 주전 라인업을 구성하여 개막전을 치른 적은 지난 4시즌 이후 올해가 처음이었다. 즉, 네츠는 전형적인 부상 병동이라 제 전력을 발휘했던 시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하여간에 이런 호재가 Kidd라는 포인트 가드 효과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네츠를 시즌 초반 동부 컨퍼런스의 다크호스로 만들고 있다. Kidd는 능력은 있으나 다소 산만했던 네츠의 스코어러들을 응집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Kidd는 현재 평균 12.1 득점, 9.9 어시스트, 7.1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리더다운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의 동료들은 Kidd의 플레이-침착한 경기 운영과 능수능란한 세트 플레이 전개, 리그 최고의 속공 전개 능력 등-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고, 특히 Keith van Horn은 'Marbury가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분명 Kidd가 팀에 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라며 그를 칭찬했다.

Marbury vs Kidd? Marbury가 공격형 포인트 가드이면서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잘해주는 타입이라면, Kidd는 자연적인 포인트 가드 스타일에 가깝다. 다만, 스코어러는 많음에도 응집력이 부족하고, 특히 4쿼터 막판 중요할 때 확실한 공격 루트가 부족했던 네츠에게 있어선 Kidd의 비이기적이고, 안정된 플레이가 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일 뿐이다.

3. 지난 시즌, KBL에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팀은 단연 창원 LG 세이커스였다. 화려한 속공과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하는 세이커스가 작년 KBL의 화제 거리였다면, 올해는 그에 못지 않은 화려함과 폭발력을 자랑하는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있다.

오리온스는 지난 해 9승 밖에 거두지 못한 '한심했던' 팀이었으나, 올해 마커스 힉스라는 2001년 트라이아웃 1순위 지명 선수를 영입하고, 동국대 출신의 센스 있는 포인트 가드, 김승현 영입에 힘입어 새로운 도약을 내딛고 있다. 오리온스는 1차전, SK 빅스에게 아쉬운 패배를 당한 후,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며 시즌 선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확실한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 오리온스 성공에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지만, 사실 그 돌풍의 핵심은 포인트 가드 김승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 시절, 어시스트 부문에서 이미 발군의 위치를 차지했던 그가 오리온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를 차지하게 되면서 오리온스가 얻을 수 있었던 효과는 다음과 같다.

* 그 동안 늘 경기 운영에도 신경을 써야 했었던 오리온스의 스윙맨들이 이제는 보다 득점이나 기타 다른 역할에 신경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Ex> 김병철, 새로 가세한 위성우 등)

* 한국의 '제이슨 윌리엄스'는 프로 베테랑 포인트 가드 못지 않은 속공 전개 능력을 갖고 있고, 이는 오리온스가 리그에서 가장 빠른 팀 중 하나가 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 그는 외곽슛은 부실해도, 속공 찬스에서 그리고 페네트레이션을 통해 수준급의 득점을 올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몇 안되는 포인트 가드 중 하나. 현재 그는 평균 12 득점 가량을 기록 중이다.

김승현은 현재 평균 8.9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 부문 전체 3위를 마크하고 있으며, 평균 3.6 스틸은 리그 전체 1위 기록이다. 김승현의 또 다른 장기는 바로 뛰어난 근성. 그는 지난 8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 도중 아티머스 맥클레리의 팔에 맞아 오른쪽 눈 부위를 크게 다치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 끝까지 팀을 위해 코트에서 플레이하는 근성을 보이며 많은 찬사를 받았던 바 있다. 루키가 이렇게 뛰는 모습을 보는 베테랑의 심정을 어떠할까? 앞으로 오리온스의 성적이 그 해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가드는 팬들을 즐겁게 하는데, 특히 좋은 포인트 가드는 팬과 감독 모두를 즐겁게 한다.'라고...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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