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스포츠]K2 그들은 왜 산으로 가는가

  • 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29분


순백의 설산이 그리운 계절. 겨울산을 향하여 시인 조정권은 ‘산정묘지1’에서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차라리 침묵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니까 겨울 설산은 봄 가을의 단풍 놀이 따위를 깡그리 부수면서 하나의 엄숙한 지상 목표로 존재하는 것이다.

‘등산도 스포츠인가’ 하는 질문은 차라리 저 계곡 아래의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겨울 설산의 맹혹한 바람을 꿋꿋이 버티며 한걸음씩 위로 내딛는 행위는 레저로서의 ‘등산’이라는 행위를 뛰어넘는 순례가 된다. 더욱이 해발 7000m 이상의 아득한 영역은 왜 오르는가 하는 질문마저 경거망동한 주책으로 만들어버린다. 폐수종, 시력 상실, 의식불명, 뇌수종 등이 기다리는 이 죽음의 지대를 향하여 우리 산악인들은 1963년 경희대 산악회의 다울라기리 2봉 등정을 시작하여 온갖 진기록을 세웠다. 77년에 에베레스트(8848m) 등정 이후 8000m급 14개 고봉을 완등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고 고상돈,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이 그 이름들이다. 물론 익숙한 코스를 따라 등정하기 보다는 새 루트를 발굴하여 최초의 걸음을 남기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거나 8000m급 등정의 역사에 우리 산악인의 족적은 우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인가. 정상을 몇미터 앞에 두고 물러서는 아쉬움이 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동료를 설산에 묻는 일도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장비를 챙겨 히말라야를 향해 또 떠난다.

프랭크 로담 감독의 영화 ‘k2’는 엄홍길과 박영석도 최후의 목표로 절치부심했던 히말라야의 8000m봉 14좌 중 가장 높고 어려운 코스로 알려진 8610m의 K2를 소재로 한다. 패트릭 메이어즈의 토니상 수상 희곡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산악인의 야망과 인간적 갈등을 그린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산악인이 아니라 K2, 그 우람한 위용이다. 그 아래에서의 우정과 위기란 결국 K2, 그 아득한 고봉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명민한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의 신서사이저가 히말라야의 위용을 더욱 드높이는 ‘k2’는 초겨울, 이즈막의 정신 수련을 위한 유익한 영화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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