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기서 우리 또 한 번 찬찬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저 대전의 우승 요인과 우승 후의 달라진 점을 너무 감정적인 부분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점이다. 대전의 팀 상황이 다른 팀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FA컵 대회 우승자라면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그들의 실력을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변과 운이 심심찮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대전이 이룬 우승이라는 타이틀은 이변이나 운을 뛰어 넘은 것이었다. 한 두 번 정도의 운이나 고비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끗발도 맞아주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우승까지는 하지 못할 것이다. 딱 잘라 말해서… 대전이 잘나서 스스로 우승 먹었다는 말이다!
대전은 김은중이 절정의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고비마다 확실하게 득점을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부상 공백을 깨고 복귀한 이관우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 주었다. 부지런히 뛰면서 파이팅이 넘치는공오균과 성한수의 활약, 그리고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더욱 탄탄해진 최은성의 방어력과 용병 콜리의 수비력… 사실 하나 하나 짚어 보면 대전도 충분히 우승권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이 정도의 선수 구성이라면 군침 흘릴만한 팀들도 많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전력을 1년 내내 가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팀 재정 문제로 인해 적절한 지원이 따라줄 수 없었기 때문에 K-리그에서의 성적은 신통치가 못할 뿐이다. 더구나, 올해를 끝으로 폐지된 드레프트 제도는 하위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을 하는데, 대전은 그 동안 주로 하위권에 머문 덕택에 신인 농사는 꾸준히 잘 지어 온 셈이다. 팀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어려운 길을 거쳐서 도달했을 뿐이지, 결코 대전이 이룰 수 없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꼭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대전의 우승을 ‘독기’와 ‘헝그리 정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력이 가장 큰 요소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전에게 패배한 다른 팀들에 대한 예의과 명예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대전이 객관적인 실력 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면, 대전에게 패한 나머지 팀들은 배부르고 등가죽 따뜻해서 정신이 해이해 졌다는 말이 될까? 실력에 의한 패배가 아닌, 정신력에 의한 패배라는 말처럼 선수에게 있어서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 말은 우승 팀 대전은 물론이고 다른 팀들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가! 다른 팀들이 정신 바싹 차리고 다시 덤빈다면, 과연 그들이 대전을 꺾을 수 있다고 확신하시는가? 그 시합에서 대전이 이기는 것이 어색해 보일까? 그렇지 않다. 최소한 월드컵 예선 D조에서 포루투갈, 폴란드, 미국과 대결을 펼칠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보다는 대전의 FA컵 우승 가능성이 애초부터 더 높지 않았을까?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대전을 앞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이제 우승도 했으니 뭔가 달라지겠지… 이제는 다른 잘나가는(?) 팀들처럼 든든한 지원과 빠방한 시설, 더욱 탄탄해진 선수진을 갖추고 향후 수년 안에 K-리그 최고 명문으로 도약을 하겠지…
물론 그 꿈과 계획은 꼭 필요한 것이고 한발씩 그 꿈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올 시즌 FA컵에서 우승한 것에 대한 보상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한 번의 FA컵 우승으로 모든 것이 술술 풀려 나가지는 않을 것 또한 분명하다. 당장 수십억이 생겨서 전용 연습시설이 갖추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선수들의 연봉이 대폭 인상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승 효과로 인해 조금은 수월하게 스폰서를 따낼 수 있을 것이고 관중 동원에도 유리한 부분이 생기겠지만 대전이 헤치고 나가야 할 길은 여전히 가시밭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프로 축구 팀이라는 것이 자생적인 클럽으로 성장을 한 것이 아니라 기업 주도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대전이 헤쳐 나가야 할 운영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대전 입장에서는 돈을 더 끌어 들여서 제법 규모가 갖추어진 대형 클럽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작지만 알찬, 그리고 자생력이 있는 클럽으로 발전하는 계기로 삼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마치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속에서 실속 있고 자금구조가 탄탄한 중소기업과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 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프로 팀 치고 자생력 있는 팀이 어디에 있는가? 통산 몇 회 우승이라느니 대표 선수를 몇 명 배출 했다느니 하는 말을 자랑으로 삼는 소위 명문 강호들도 모기업의 돈줄이 약해지면 바로 몰락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금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지역 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한 대전 시티즌이 훨씬 건강하고 모범적인 클럽이 아닌가 생각된다.
섣불리 대전 시티즌에게 명문으로의 도약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시장에서 인정 받을 만한 좋은 상품 하나를 내 놓은 중소기업에게 대기업으로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령, FA 컵 우승을 통해서 내년 시즌에 10억의 운영자금이 더 생긴다고 했다고 하자. 대전이 다른 팀들처럼 10억짜리 용병 하나 데려다 쓴다든가 선수 각자의 연봉 인상분을 채우기 위해 10억원의 돈을 쓴다면, 비록 10억 만큼의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대전은 전과 똑같이 K-리그 최약체로 평가되는 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신인 드래프트가 폐지되고 자유계약선수가 출현하는 내년 시즌부터는 돈의 위력이 더욱 판을 치게 될 것이다.
FA컵 우승으로 인해 주력 선수들에게는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대전에게는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몇몇 선수들에게는 상응하는 연봉 인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고 팬과 스폰서 기업의 기대치도 상향 조정될 것이니, 그만큼 구단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외국의 경우에 우승 멤버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팀으로서는 우승 멤버들의 연봉 인상을 감당하기 힘든 반면 돈이 마련된 클럽들은 경쟁적으로 그 선수들을 영입하려고 하며, 구단 입장에서는 프리미엄을 얻으면서 평소보다 비싼 값에 선수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 실정에서 그런 변화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기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면서 뛰어 온 선수들을 언제까지 붙잡아 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어쩌면 출생과 기반부터가 나머지 구단들과는 구별되는 대전 시티즌이라는 팀의 운명 또한 나머지 팀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유산이나 지원 없이 맨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자수성가하는 작은 성공. 아직 한국의 프로 팀 중에서 아무도 이루지 못한 작고 소박한 성과를 대전이 가장 먼저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져볼만 하지 않을까… 5년이란 시간을 돌아서 하나의 값진 우승 타이틀을 가져왔듯이 그런 과정을 튼튼하게 밝아간다면, 비록 다른 팀들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가긴 하겠지만 대전이 K-리그 챔피언을 차지하는 영광스런 성공의 날 또한 언젠가는 찾아 올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그 성공은 다른 팀들에 비해서 훨씬 값지고 영광스러울 것이며, 대전의 성공만이 아닌 K-리그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맨날 떠들었다. 중소기업이 강해야 국가 경제가 튼튼하다고… 중소규모의 작은 축구 팀들이 탄탄하고 자생력이 있어야 한국 축구가 튼튼하지 않겠어? 이 부분에 있어서 대전보다 더 당당하고 떳떳한 팀 있으면 한 번 손 좀 들어봐라!
이번 FA 컵 우승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대전 시티즌’이라는 이름이 모든 대전 사람들이 두고두고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이 구심점이 되어 ‘시티즌’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자립형 프로 축구단으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1 FA컵 우승 팀 대전 시티즌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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