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는 편견과 비인기종목이란 홀대.
그러나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때는 어김없이 이런 편견과 홀대를 이겨내고 그동안의 무관심과 차별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온갖 방송과 신문에 일면을 장식하는 스포츠가 바로 여자 핸드볼이다.
88서울, 92바르셀로나에서 연거푸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하며 구기 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이룩했고, 95세계선수권 우승, 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등 10년 가까이 세계최강으로 군림했다. 서양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키와 덩치에 한국여성 특유의 강인함으로 당차게 맞서 싸워 이기는 모습은 올림픽에서나 세계대회에서 언제나 국민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른 종목에 비해 열악한 지원과 낙후된 시설등의 어려움을 겪고 금메달과 우승이라는 영광을 차지했을때 어김없이 선수들은 코트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의 설움을 하소연했다. 금메달을 따면 우승을 하면 다음 대회부터는 보다나은 지원과 시설 지원이 있겠지 하는 기대와 설레임에 귀국길에 오르면 열렬하게 응원하던 국민들과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기업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림픽과 세계대회가 끝나면 예전처럼 다시 차별과 편견, 설움을 받으며 묵묵히 다음 대회를 위해 땀을 흘린다.
정신력만을 가지고 싸우던 여자핸드볼이 드디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여자핸드볼이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15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6강전 노르웨이와 경기에서 분전했으나 8강진출에 실패했다. 성원과 지원없이 16강까지 간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목표로 했던 4강진출이 애시당초 무리수였다.
이제 세계최강임을 자부하던 한국여자핸드볼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세계최강의 자리에 있던 한국여자핸드볼은 지난 97년이후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다. 97년 IMF사태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자 실업팀은 줄줄이 해체의 길로 들어서고 이제 고작 4팀의 실업팀만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4팀 또한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상황속에 선수들은 불안한 마음에 운동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실업팀이 4팀밖에 되질 않으니, 운동을 하던 중,고교 선수들도 좁은 취업문에 중도포기를 하게 되고, 선수를 수급해주던 초중고에서도 인기종목인 야구나 축구에 창단과 지원을 늘릴뿐 비인기종목인 핸드볼은 창단은 커녕 있는 팀마저 해체를 하고 있어 선수확보에 어려움마저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까지 버텨왔던 대표팀 주전들이 대거 노장의 길로 접어들어 상대적으로 열세인 체력과 수년간 경기에서 입은 부상등으로 이렇다할 경기력을 선보이질 못하고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줄 신진선수들 발굴은 뒷전으로 미뤄지고 대회성적에 치중하다보니 지나치게 노장선수들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강인한 정신력과 조직력을 길러 주웠던 훌륭한 지도자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 나간 것도 이유이다. 시드니 올림픽에 여자대표팀 코치를 지냈던 임영철씨는 유고연방 프로팀의 감독직으로, 실업 최강팀인 제일 생명의 사령탑이였던 서순만 감독은 지난 11월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등 유능한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대우와 여건이 좋은 나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불안함속에 뜻대로 운영한번 못해보는 열악한 팀 사정등을 이유로 떠나고 있다.
여기에 팬들과 일반인의 철저한 무관심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핸드볼 최고의 잔치인 핸드볼 큰잔치에는 경기당 평균 몇십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성인선수들의 뛰는 모습을 보러 온 일선 초중고학생들 또한 찾아 볼수 없고, 명실상부 국제대회를 국내에서 유치해도 방송 중계 한번 없는등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10년간 지켜온 세계최강 한국여자핸드볼...
어려움과 배고픔, 설움을 이겨내던 강인한 여자핸드볼 선수들도 이젠 더이상 버틸 희망과 열정이 사라졌다. 누가 이들의 희망과 열정을 되살려 줄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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