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겨울 휴식기의 레버쿠젠, 드디어 리가 마이스터에?

  • 입력 2001년 12월 24일 10시 19분


분데스리가도 다른 나라 리그들처럼 겨울 휴식기가 있다.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독일의 특성상 겨울이 긴데, 오히려 더 북쪽이지만 사방이 바다인 잉글랜드보다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프리미어리그 보다도 분데스리가에선 축구장 곁으로 눈을 치워놓고 경기하는 일이 많은 것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지난 우크라이나와의 플레이오프 일정 때문에 겨울 휴식기가 적잖게 밀려서 분데스리가는 18룬데를 치른 19일 수요일을 끝으로 2002년 1월 26일까지 겨울 휴식기에 들어갔다.

축구를 사랑하는 독일인들이지만, 지금은 진눈깨비 오는 축구장에서 독일식 소주(Schnaps)를 마시며 경기를 관전하기보다는, 각 도시와 마을에 서는 크리스마스 장(Weihnachtsmarkt)에서 계피와 설탕을 넣어 뜨겁게 데운 붉은 포도주인 글뤼바인(Gluehwein)을 마시며 시장구경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분데스리가는 사상 유례없이 후끈후끈한 겨울 휴식기를 맞고 있다. 바로 바이어 레버쿠젠의 거침없는 선두질주와 한층 달아오른 분데스리가 이적시장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독일인들은 독일 크리스마스의 가장 이채로운 풍습인 강림절 화환(Adventskranz)에 정신이 팔려있을 것이다.

네 개의 초가 꽂혀있는 강림절 화환에 크리스마스 4주 전부터, 한 주 지날 때마다 초에 하나씩 불을 붙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대하고 준비하는 독일만의 풍속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업도시 레버쿠젠의 축구광들 만큼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보다도 분데스리가 우승방패인 마이스터샬레(Meisterschale)가 그들 도시에 오길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레버쿠젠은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요새 레버쿠젠이 심상치 않다. 클럽의 97년 역사 내내 지금껏 가을까지 리가 1위를 달려본 적이 없는 레버쿠젠 이었다. 언제나 최고의 선수층을 자랑 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판에 가서 뒤집히는 경기들이 그들이 투지를 저하시켜왔고, 사람들은 절대 강자들 사이에서의 '뚝심부족'이라며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레버쿠젠은 이번 시즌에 들어오며 이러한 비판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13룬데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기어코 따라잡은 레버쿠젠은 5주째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바이에른 뮌헨과 점점 격차를 벌리고 있다. 현재 레버쿠젠은 18룬데를 소화한 현재 승점 39점으로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레버쿠젠이 이번 시즌에서 이토록 분전을 할 수 있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주전들의 고른 득점이다. 현재 44골로, 팀 득점 2위인 카이저슐라우테른과는 8골 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7골까지의 득점 10걸 가운데 레버쿠젠 소속의 선수들이 세 명이나 들어가 있다. 3위엔 9골의 발락과 노이필레가, 그리고 7골로 공동 7위를 기록하고 있는 노장 키어스텐이 그들이다.

경쟁 팀들인 2위 도르트문트가 아모로수 한 명을, 3위 베르더 브레멘이 아이우톤 한 명을, 4위 카이저슐라우테른은 클로제 한 명을, 그리고 5위 바이에른 뮌헨이 피사로와 에우베르 두 명을 올려놓은 것에 비하면 여기서 최소 7골 이상을 앞서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최근 물 오른 대표팀의 오른쪽 날개 베른트 슈나이더가 네 골, 브라질의 전천후 수비수 루시우가 세 골, 2100만 마르크의 사나이 제 호베르투가 두 골 하는 식으로 주전 모두가 고른 득점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적생들의 성공적인 적응도 큰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에, 볼프스부르크에서 사온 과격한 미드필더 졸탄 제베스켄과 ZSKA 소피아에서 사온 80년 생 불가리아 국가대표 베르바토프, 작달 만한 터키의 78년 생 미드필더 바슈튀르크가 각각 두 골씩 그것도 고비마다 넣어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둘째로, 공격수들의 이러한 활약은 노보트니가 이끄는 수비진에 많은 부담을 덜어 주었고, 이것은 플라센테-노보트니-루시우- 지브코비치의 포백이 더욱 안정될 수 있는 힘을 실어준 것이라 볼 수 있다.

함부르크에서 사온 골키퍼 부트가 꾸준히 골 문을 지키는 것 또한 우승 경쟁 팀들에서는 볼 수 없는 안정된 모습이다. 이처럼 공수에서 안정되고 착실한 짜임새를 보이는 레버쿠젠은 유례없는 클럽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29일에 있었던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D조 경기에서의 치욕적인 0:4 패배는 토프묄러 감독 이하 팀원들 사이에 분데스리가에서의 성공으로 유럽에서까지 안이한 플레이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던 것 같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홈에서 열렸던 12월 4일의 챔피언스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는 에스파냐의 강호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를 3:0으로 꺾는 파란을 연출하게 된다. 그것도 후반전에서 15분 사이에 세 골을 다 몰아넣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클라우스 토프묄러 감독을 고무하는 것은 지난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를 꺾은 여세를 분데스리가에서도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16룬데에서는 뉘른베르크에 4:2의 역전승을 거두며 레버쿠젠 답지 않은 뒷심을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20일에 홈으로 아스날을 불러들여서 치르게 되는 3차 전에서 아마도 레버쿠젠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이 경기는 이번 전반기의 좋은 분위기를 후반기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상승세들과 종래엔 볼 수 없었던 뚝심은 그들의 최고의 경쟁자인 바이에른 뮌헨의 부진 때문에 더욱 더 큰 효과를 보이는 듯 하다. 현재 뮌헨은 지난 11월 28일 도요타컵 때문에 도쿄에 갔다 온 뒤 급격한 체력저하를 보이고 있다. 뮌헨 정도 되는 클럽은 로테이션 제도를 돌리지만, 현재는 부상인원 들이 너무 많아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뮌헨은 현재, 주장 칸 조차 부상에서 신음하고 있을 정도이다.

뮌헨은 사실 도요타컵 우승 이후 4경기 무승의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다. 15룬데에선 헤르타 베를린에게 1:2의 역전패를 당했고, 홈에서 벌어진 16룬데에선 슈투트가르트에게 2:0으로 이기다가 3:3으로 따라 잡혔으며, 17룬데에선 발트해의 항구도시 로스토크까지 원정을 가서 후반 40분 경, 교체되어 들어온 지 3분 된 한자 로스토크의 미드필더 히르슈에게 결승골을 내주면서 0:1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이번 18룬데에선 묀셴글라드바흐와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지난 12월 5일 낭트에서 가졌던 챔피언스리그 A조 두 번째 경기에선 1;0으로 간신히 이겼고, 최근 DFB포칼에서는 오스나브뤽에게 어리버리한 2:0 승리를 따내기도 하였다. 근 들어 에펜베르그와 숄이 완전한 몸 상태는 아니지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주전들의 회복도 손발을 맞추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18룬데 현재 5위인 뮌헨을 레버쿠젠의 최대 경쟁자로 꼽는 까닭은 우선 분데스리가 마이스터 17회에 빛나는 저력의 팀이며, 최근 분데스리가 3연패를 하면서도 대부분 박빙의 우승을 보여줬던 뮌헨의 뚝심을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버쿠젠은 지난 99/00시즌에서 득실차로 리가 마이스터 문턱 앞에서 주저 앉았던 것을 기억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새 레버쿠젠은 급격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난 15룬데에서 베르더 브레멘에게 1:2로 진 뒤, 17룬데의 베를린 원정경기에서는 1:2로 패하면서 14경기 연속 무패의 기록을 마감 했지만, 유일하게 리가 팀들 가운데 2패만을 기록하며 안정된 전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18룬데의 볼프스부르크 원정경기에서는 시종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치다가 1:3으로 힘없이 패하며 2연패의 부진에 빠졌다. 수비의 핵 노보트니가 빠진 경기였고, 원정경기 였지만 레버쿠젠의 슬럼프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 클럽들이 원정경기에서는 유난히 약한 모습들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번의 2연패는 조금 충격적이다. 게다가 레버쿠젠의 3패가 모두 최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피로누적에 의한 결과라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챔피언스리그, 분데스리가, 그리고 DFB포칼의 세 개 대회를 치러야 하는 레버쿠젠으로서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도르트문트가 승점 39점으로 레버쿠젠을 따라 붙었고, 레버쿠젠은 단지 득실차와 다득점에서 앞서 1위를 달리는 박빙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선수층은 두터운 편이지만, 유겐트 시스템에서 올라온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라 큰 경기에 맘놓고 내보낼 수 있는 검증된 선수들은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단기간의 전력 상승은 선수영입 뿐이지만, 레버쿠젠은 유럽에서 재정적으로만 본다면 결코 부자구단은 아니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레버쿠젠 시가 인구 20만도 안 되는 작은 공업도시이기도 한 데다가, 레버쿠젠의 모 기업인 세계적인 화학·제약회사인 바이어사 또한 그런 쪽으로 투자하려는 눈치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레버쿠젠을 기다리는 암초는 또 있다. 사상 유례없이 달아오른 이번 겨울 휴식기의 분데스리가 이적시장의 동향이 레버쿠젠에게는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레버쿠젠은 유겐트 시스템에서부터 그들이 길러온 전천후 미드필더 미카엘 발락의 등 번호 13번을 비울 마음의 준비를 끝낸 상황이다. 발락의 영입의사를 타진해 온 클럽들은 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하여,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같은 명문 구단들을 위시해서 10여 개에 달한다. 발락의 이적은 기정사실화 되어 보이며, 레버쿠젠은 미드필드에서의 전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이미 21세 이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이자 현 아르헨티나리그 챔피언인 AC 산 로렌소의 신예 게임메이커 레안드로 아틸리오 로마뇰리의 영입을 이미 마무리 지은 상황이다. 그리고 추가로 두어명 선의 영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레버쿠젠의 구단주 라이너 칼문트는 얼마전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노보트니나 루시우, 제 호베르투 등의 주축 선수들을 둘러싼 이적설이 나도는 마당에 팀의 조직력을 걱정해야 할 토프묄러 감독의 마음은 조금 다를 것이다.

레버쿠젠은 일단은 1위로 전반기 일정을 마쳤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레버쿠젠의 리가 마이스터 실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타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들의 주장 울프 키어스텐은 이미 36살의 노장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보증수표가 없다. 이제부터 레버쿠젠은 그들의 경쟁자들에게 거센 도전을 받을 것이고, 그 경쟁자들은 이번의 겨울 휴식기를 통해 전력을 축적한 상태일 것이다.

언제나 시즌 막판의 집중력 저하와 뒷심부족으로 마이스터샬레를 치켜 들어올리지 못했던 레버쿠젠. 그들이 이 막막하기 만한 소모전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략을 세워 체력적인 부담을 줄이느냐가 그들을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자면 토프묄러 감독은 적어도 하나의 대회를 버려야 할 것이다. 지금의 레버쿠젠에게 중요한 것은 전술보다도 전략인 것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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