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선수라는 입장차이는 있지만 2002월드컵을 치러야하는 일본 대표팀에서 빼놓을수 없는 두명이다.
충돌, 엇갈림, 교차하는 서로의 시선을 더듬어 찾으며 일본 대표팀의 한 식구로서 함께한 지난 1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6월, 최강의 대표팀을 만들 열쇠를 찾기 위해서.
▼“결승전에 뛰어줄수 있는가” “로마로 돌아가겠다”▼
트루시에 감독이 일본땅에 발을 디딘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도쿄의 한 호텔방에서 텔레비젼 녹화를 끝낸 프랑스출신 이방인 감독은 넥타이를 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비진의 커버 플레이를 프랑스어로 말하면‘담요’의 의미도 된다. 일본어로 직역하면 이상하겠지만. 일본 생활 초기에는 통역문제때문에 고생했다.”
농담을 좋아하는 파리 남자는 축구에 관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끝이 없다.
그러나 화제가 나카타로 옮겨졌을 때 그의 안색은 싹 바뀌었다.
“비록 나카타에게 비판은 하지만 그를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또한 당신이 아닌가” 라고 물었다.
트루시에의 대답은“그렇지 않다”였다. 트루시에는 불쾌한 표정으로 부정했다.
그렇다면 나카타는 트루시에 감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카타가 그의 측근에게 한 말이 답이 될수 있을까.
“그라운드안에서는 전혀 문제 없다. 다만 그 이외의 부분에선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두사람의 불화가 표면화 된 것은 작년 6월 컨페데레이션스컵이었다.
두사람은 준결승전이 끝난 후 운동장에서 언쟁을 벌였다.
많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슈트차림의 트루시에감독은 “결승전에도 뛰어 줄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나카타는“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우승이 걸려있는 경기를 위해 예정대로 로마로 돌아가겠다”고 대답했다.
짧은 언쟁 뒤, 슈트의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양손을 넓혀 보였다.
일본대표팀의 버스가 숙소인 요코하마시내의 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나카다는 짐을 정리해 친구가 기다리는 토쿄로 출발했다. 트루시에는 호텔 바에서 흥분한 자신을 진정시켰다.
‘일본 축구 협회와 나카다의 소속팀 AS로마는 일본이 결승전에 진출하더라도 준결승 후 나카타가 소속팀 AS로마로 돌아가도록 약속했다.’ 나카타가 준결승 직전에 자신의 홈 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공식 대회에서 일본이 우승 할 기회를 잡았고 그것이 일본축구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세리에 A의 우승은 나에게 그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가 일본인으로서 세리에 A 우승 순간에 그라운드에 서있는 것은 앞으로의 일본 축구를 위해서도 결코 쓸데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카타는 덧붙였다.
트루시에는 프랑스에 패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에 머문 뒤 말했다. “만일 이곳이 유럽이라면 나카타를 두 번 다시 대표팀에 부르지 않는다. 그를 부른다면 다른 선수들이 보이콧을 할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대표팀의 중요한 시합에 출전을 거부한 그는 이만저만한 에고이스트가 아니다”
▼“감독이 모두 결정한다” “나는 내 생각대로 한다”▼
두사람은 각자 독특한 개성(방식)이 있다.
선수시절 무명이었던 트루시에는 지도자로 변신 후 국제 무대에서 많은 업적을 쌓고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3부 리그에서 2부로 승격한 ‘레드스타’를 지휘하던 신출내기 감독시절. 트루시에는 팀의 중심선수와 말타툼을 하다가 그를 냅다 밀쳐버린 후 연습에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말.
“트루시에는 의식적으로 선수와 대립해 자신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관철시킨다. 모든 선수를 수평적으로 대해 경쟁심을 일으키도록 만든다.”
이색적인 이 지휘관은 자신의 신조를 이런 우화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내가 원한다면 합숙 중에 선수들과 함께 술을 마실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가 먼저 요구한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감독과 선수의 차이는 분명히 해야 한다. 팀의 모든 결정은 감독이 한다”
트루시에는 주위의 존경을 받고 있는 ‘슈퍼스타’ 나카타에게도 특별 대접을 하지 않는다. 식사, 복장, 행동 등 트루시에가 정한 질서에 따르도록 명해 왔다. 나카타는 겉으로 보기엔 잘 따라 왔다. 하지만 그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납득은 못하고 있다.
무명의 중학생 축구선수 시절의 나카타는 코치의 연습지시에 의문이 생기면 코치의 집까지 찾아가 “왜?”를 연발하는 소년이었다.
스스로 납득하면 철저하게 연습하고 연구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단련해 왔다.
나카타는“축구 뿐만 아니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고, 내 의견을 가지고 있으니까.”라며 자신의‘철학’을 피력한 적도 있다.
▼1년 넘는 두사람의 침묵▼
일본과 이탈리아의 친선경기가 벌어졌던 작년 11월 7일.
그날 아침 스포츠지에는 전날의 공개 연습 사진위에 트루시에의 발언을 인용한 ‘나카타 주전 탈락’이라는 제목이 실렸다. 나카타도 하루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트루시에 감독으로 부터 “이번 경기에선 벤치멤버”라는 말을 들었다.
소속팀 파르마에서의 슬럼프가 이유일까. 아니면 트루시에의 ‘술수’인가.
시합날 오후. 팀미팅 전에 일본 축구 협회 강화 추진 본부의 키노모토 코조 부 본부장이 나카타를 불렀다.
키노모토는 “전부터 감독에게 불만을 품고있는듯한 모습이 보여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나카타에게 말을 걸었다.
키노모토는 “감독이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월드컵과 일본 대표팀을 위해 너의 경력을 쓸데없게 해서는 안 된다. 어른스럽게 행동하면 좋겠다”고 나카타에게 충고했다.
나카타는 냉정하게 경청한 후 “서로를 알기 위해서 라면 언제라도 감독과 이야기할 용의가 있다”고 대꾸했다.
2001년 마지막 국제 시합이 벌어진 그날밤.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이후 나카타는 7경기 만에 일본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평소와 다른점이 있다면 약 3년만에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 경기시작을 지켜봤다는 것.
일본은 전반에 선취점을 빼았겼지만 나카타가 들어간 후반에 한골을 만회해 1-1으로 비겼다.
이날 시합은 나카타 없는 일본 대표도 강팀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탈리아전이 끝난 다음에도 두사람은 특별한 대화없이 헤어졌다. 두사람이 마지막으로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눈것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나카타 히데토시=77년1월22일생,24세.야마나시현 고후시 출신.히라쓰카(현 쇼난)로부터 이탈리아 세리에A의 페루자에 이적.로마를 거치고 현재 파르마에 재적.일본 대표로 40 시합 출전,7 득점.
▽필립 트루시에=55년 3월 21일생,46세.프랑스·파리 출신.코르티부아르,나이지리아,불키나파소,남아프리카 대표 감독을 역임.98년 가을에 일본 대표 감독 취임.
아시히 닷컴 정리=<민진기 동아닷컴 기자>jinki2000@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