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 횡성에서 태어난 이형택(26·삼성증권)은 누구보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까.
지난해 세계랭킹 60위에서 100위 밖으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던 이형택이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투어 대회에서 8강전에 진출하며 재도약을 향한 힘찬 시동을 걸었다.
9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디다스인터내셔널(총상금 40만달러) 남자단식 2회전. 1회전에서 전 세계 1위 카를로스 모야(스페인)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던 이형택은 세계 82위로 한때 세계 6위까지 올라갔던 캐롤 쿠체라(슬로바키아)를 단 3게임만 내주고 2-0(6-1, 6-2)으로 완파했다. 개인 통산 4번째 투어대회 8강 진출.
새해부터 산뜻한 출발을 보인 이형택은 지난해 이루지 못한 세계 50위 진입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평가. 영욕이 교차되면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공격적인 플레이스타일로 변신하며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게 이형택의 말. 앞으로 투어대회와 챌린저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올려 일단 메이저대회 본선에 직행할 수 있는 100위 안에 재진입한 뒤 계속 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각오.
이형택은 “몇 차례 위기를 잘 극복했고 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공이 들어갔다”며 “처음에는 부담이 많았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탄력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형택은 첫 세트 게임스코어 1-1에서 강력한 스트로크와 과감한 네트 공략으로 내리 5게임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 2세트 들어서도 먼저 첫 게임을 내줬으나 안정된 서브 리턴을 앞세워 5-2까지 달아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예선 3경기와 본선 1회전을 잇달아 치르면서 허리통증에 시달렸던 이형택은 경기를 앞두고 시드니 차이나타운에서 침까지 맞아가며 출전하는 투혼을 떨쳤다.
이형택은 보단 울리히라흐(체코)를 2-0으로 꺾은 미국의 차세대 에이스 앤디 로딕(20)과-10일 4강 진출을 다툰다. 이형택은 지난해 로딕과 2차례 맞붙어 모두 패했다. 특히 지난해 5월 US클레이코트챔피언십에서는 결승에서 만나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아픈 기억도 있다. 2000년 프로에 데뷔해 통산 3승을 거둔 로딕은 세계15위로 최고 시속 220㎞를 넘나드는 강력한 서브가 주무기.
이형택은 “로딕은 서브가 워낙 세고 힘겨운 상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설욕을 노리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형택은 이 대회 8강전에 출전하기 위해 같은 날 시작되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예선은 포기하기로 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