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화제]신데렐라의 요즘 생활

  • 입력 2002년 1월 20일 17시 34분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한때 세계 스포츠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한국의 ‘스포츠 신데렐라’들. 세계의 시선을 받으며 한국 스포츠의 우먼파워를 알렸던 그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주부로, 사업가로, 학생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한국 스포츠의 ‘대표 신데렐라’ 현정화(탁구) 서향순(양궁) 강초현(사격) 3인의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탁구 그랜드 슬래머 현정화■

▽주부로…코치로…학생으로 1인3역▽

은퇴한 지 벌써 8년. 상대 선수와 네트를 마주할 때마다 어깨를 짖누르던 긴장감도, 시상대 위에 오르며 북받치던 감격과 설레임도 이미 오래전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러나 여전히따라다니는 ‘탁구 여왕’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85년 고교(부산 계성여상)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돼 ‘녹색 테이블의 신데렐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정화(33·한국마사회코치). 그녀는 요즘도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치 않고 살고 있다. 어머니로, 아내로, 학생으로….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전종목 석권의 신화를 쌓으며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는 ‘종목’만 바뀌었을 뿐 현역 시절 못지않은 패기와 강단이 생활에 묻어난다.

94년 3월 탁구최강전 우승과 함께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한 뒤 98년 역시 탁구 주니어대표 출신인 김석만(포스데이타 코치)씨와 결혼했다. 지난해 4월 낳은 첫딸 서연이는 보물 1호. 만나는 사람마다 지갑에 꼭꼭 넣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이쁜 딸 자랑’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생활에 엄마노릇하기가 쉽지 않지만 집에 들어가자마자 딸 얼굴에 뺨을 부벼야 마음이 놓인다. 부산에서 올라와 애기를 봐주고 있는 친청 어머니의 도움이 없다면 살림과 일을 병행하기가 힘들 터. 역시 탁구 지도자인 남편의 너그러운 이해도 큰 힘이 된다.

“남편이 같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다행이에요. 일에 대해서도 함께 상의할 정도로 이해를 많이 해주는 편이죠.”

한국마사회 탁구단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경기상고 체육관에서 훈련한다. 매일 9시면 운동 시작.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천진난만한 소녀의 표정을 가진 그녀지만 이 시간이 되면 엄격한 코치로 변해 선수들을 대한다. 선수들이 자기 뜻대로 공을 넘기지 못하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진다. 현역 시절의 성격 그대로 ‘악착같이’ 기술을 전수해 보려고 애쓴다. 그나마 요즘은 지도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편이라고. 처음에는 “선수들이 왜 나처럼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머리가 한웅큼씩 빠지더라니까요. 원형탈모증이 생기면서 결국 기대치를 내리고 신경을 덜 쓰기로 했죠. 그렇다고 마냥 눈 높이를 낮출 수도 없고…. 후배들가르친다는 거 쉽지 않아요. 요즘도 ‘가르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니까요.”

지난주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 후원의 밤에 참석했다. 탁구와 동계올림픽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마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격려가 필요하다는데야. 아이를 키우면서 될 수 있으면 일찍 집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그녀를 필요로하는 곳이 많다.

현정화는 현재 경희대 체육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경성대를 거쳐, 고려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올해 박사 과정 3학기째를 맞는다. 후배 가르치랴, 살림하랴, 그 바쁜 생활속에서 도대체 언제 공부를 할까. “자투리 시간을 쪼개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걸 보면 혀가 절로 내둘러진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매일 새벽 출근하기전 영어 학원에 들러 1시간씩 공부하는 것도 일과중 하나. 서른이 넘은 나이, 애까지 낳고도 선수 시절의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선수 시절의 몸매? 글쎄….

“운동이 더 쉬워요. 한창 운동할 때 체중이 52,3kg정도 나갔거든요. 요즘은 어떤지 아세요? 45kg이에요. 도무지 살찔 틈이 없어요.”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사격요정 강초현■

▽학업-훈련 “총알처럼 움직여요”▽

‘사격 요정’ 강초현(20·갤러리아·사진)은 14일 중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출국전 전화통화가 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다. 한때 최고 인기스타로 이름을 날리다 어느새 주위의 관심에서 사라진 데 따른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요즘 기록도 잘 나오고 있어 기대가 크고 운동이 더 재미있어요.”

시드니올림픽 여자 공기소총에서 0.2점차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강초현은 깜찍한 외모와 신세대다운 당찬 성격, 어려운 가정환경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강초현 신드롬’을 이뤄내면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잇딴 방송 출연, CF모델 활동 등으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기록이 떨어지면서 각종 대회에서 하위권에 머물렀고 세인의 머리 속에서도 조금씩 잊혀져 갔다. “총도 잘 못 쏘는데 팬들이 떨어져 나가는 게 당연하지요. 선수는 실력으로 말할 뿐이에요.”

올해 스무살이 된 강초현은 3월에는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신입생으로 뒤늦게 입학하고 2002아시아경기대회 대표선발전에도 출전, 이래저래 바쁜 한해를 보내게 됐다.

“올림픽의 유명세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털어놓는 그녀는 지금은조금의 여유를 찾은 듯했다.

“다시 한번 제가 뜬다면 좀더 성숙하고 멋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요.”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올림픽 양궁 첫 金 서향순■

▽외식업소 사장님…사업서도 金▽

84년 LA올림픽에서 여고생 궁사 서향순(사진)은 당시 ‘신궁’으로 불리던 선배 김진호를 제치고 양궁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양볼이 복스럽던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꽃돼지’. 금메달을 따내자 마자 “뭐하고 싶냐”는 질문에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던 여고생은 이제 서른여섯의 나이에 패스트푸드점을 두 개나 경영하는 어엿한 사업가가 됐다.

89년 이화여대를 졸업하며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모교인 광주 동명여고에서 잠깐 후배들을 지도한 것을 빼고는 활과 아예 인연을 끊어버렸다.

90년 태릉선수촌에서 사귄 아시아경기 유도 금메달리스트 박경호씨(한서대교수)와 결혼한 뒤 남편 고향인 충북 충주에 가게를 차렸다. 지난해는 2호점도 내서 요즈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쁘단다.

맏딸 성민이가 올해 5학년에 올라가고 막내 성배도 초등학교를 다녀 주부와 사업가, 1인2역을 해내야 하기 때문.

그가 양궁선수였다는 사실은 매장 한켠에 전시된 활들에서만 알아볼 수 있는 정도.

너무 열심히 선수생활을 한 탓인지 오래서있으면 등이 아프고 무거운 것은 아예 들 엄두도 못낸단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운동하는 것은 절대반대다.

그래도 자신의 선수시절은 너무 그립단다. “너무 힘들었다는 생각 밖에 안나지만 그래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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