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맏형' 황선홍 있기에…

  • 입력 2002년 1월 23일 18시 25분


“스핀을 넣지 말고 그냥 때려.”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의 고함소리에 왼쪽에서 골포스트를 빗나간 슛을 날렸던 박지성이 달려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측면을 파고들던 이천수의 센터링이 정확하게 최용수의 머리에 맞고 골네트를 가르자 황선홍이 “굿”이라며 박수를 쳤다. 이천수의 입가엔 한아름 미소가 번졌다.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퍼모나시 한 고교 구장에서 열린 한국축구대표팀의 자체 연습경기. 투톱 황선홍-최용수에 좌우사이드 이천수-최태욱, 플레이메이커 박지성 등으로 짜여진 공격 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었다.

특히 황선홍이 수비진을 끌어내 만든 공간에서 발빠른 이천수와 최태욱은 상대 골문을 향해 연방 소나기 슈팅을 퍼부었고 공격의 출발점인 박지성도 한결 가벼운 몸놀림으로 전후 좌우를 헤집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영표도 자신감을 얻은 듯 적극적으로 2선 공격에 가담했다.

‘영원한 18번’ 황선홍. 한국대표팀의 베테랑 스트라이커인 그가 24일 열리는 북중미골드컵 쿠바전에서 한국팀의 공격 최선봉으로 나선다. 소속팀 메디컬체크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한국의 대회 8강 진출을 결정짓겠다는 각오다.

미국전 출전을 가로막았던 황선홍의 오른쪽 허벅지 근육통이 100% 회복된 건 아니다. 달리기는 90%, 돌아서서 하는 슈팅은 70% 정도의 컨디션을 되찾았을 뿐이다. 하지만 황선홍은 그 존재 자체로도 대표팀 공격 라인에 100%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이 “황선홍 형과 함께라면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날 한국 공격 라인에 포진한 선수들이 스스로의 플레이에 확신을 갖고 매몰차게 상대를 밀어붙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황선홍은 개인적으로도 이번 골드컵대회에 각별한 사연이 있다. 2년 전 이 대회 예선에서 캐나다 코스타리카와 나란히 비기고도 동전 추첨에서 탈락해 보따리를 싸야 했다. 당시 황선홍은 “2002월드컵에서도 뛰고 싶다면 과욕이겠지만 언제나 제 가슴에서 태극마크를 떼는 순간 선수 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황선홍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왔다. 선수로서도 계속 뛰고 있고 가슴엔 여전히 태극마크가 빛나고 있다. 급격한 세대교체 속에서도 한국 축구대표팀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은 바로 황선홍처럼 듬직한 맏형이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금 봐서는 90분이건, 45분이건 황선홍을 기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위험부담을 안고 무리하게 기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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