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기간중 경기장을 찾은 팬은 21일간 연인원 5000여명. 프로농구 한경기 입장 관중수보다도 적은 숫자다.
그러나 대회를 끝낸 선수들의 얼굴은 밝았다. 꿈도 넘쳤다. 남자부에서 우승한 충청하나은행의 피봇 박민철(28)과 여자부 챔피언에 오른 제일화재의 골키퍼 이남수(26). 이들은 비인기종목으로서 겪어야할 현실을 탓하기 보다는 핸드볼의 밝은 미래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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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국가대표 핸드볼 스타를 만나 그들의 애환과 꿈을 들어봤다.
요즘 프로선수들의 연봉은 웬만하면 ‘억대’다. 남자 프로농구의 경우 연봉 하한선이 3000만원이다. 박민철과 이남수. 비록 아마추어지만 이들은 핸드볼에서는 내로라하는 스타다. 이들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이남수(이하 이)〓말하기 싫어요. 친구들에게 얘기했다가 “그것 받으려고 핸드볼 하느냐 다른 종목으로 바꿔라”라고 핀잔을 들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그때가 가장 서글펐어요.
박민철(이하 박)〓(머뭇거리다)일반 회사 대졸 초임 정도 받아요. 이것도 최근에 아주 좋아진 거에요.
대한핸드볼협회 장면호 사무국장은 “자존심의 문제라 선수들이 잘 얘기 안할 것이다. 남자는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 여자는 그것보다도 적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 국장은 “결혼한 남자 선수들은 생활이 힘들고 여자선수들은 실업에서 최소 6∼7년은 뛰어야 결혼비용 정도를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뛸 수 있는 팀이 있는 이들은 행복한 편이다. 특히 여자핸드볼은 IMF사태당시 4팀이 해체돼 이젠 실업팀이 4개밖에 남지 않았다. 남자도 지난해 창단된 코로사를 포함해 실업이 3개팀이 고작이다.
박〓대우야 어떻든 99년 상무에서 제대할 무렵 갈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왜 핸드볼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당시 충청하나은행이 창단되지 않았다면 선수생활을 중단했어야 할 상황이었죠. 전 아주 행복한 경우입니다.
이〓사회 분위기도 핸드볼은 안중에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많은 것 중에 왜 핸드볼을 하느냐”고 비아냥 거리기 일쑤에요. 솔직히 큰 대회를 앞두고 선수촌에 들어갔을때도 우리는 뒷전이고 축구와 농구쪽이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죠. 우린 금메달을 따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3위나 4위를 하면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비난해요. 시드니올림픽때 여자농구와 여자핸드볼이 같이 4위를 했을때도 여자농구는 금메달을 딴양 치켜세웠죠. 우린 찬밥이었어요. 선수촌에서 수당 등 대우도 달라요. 아마 축구의 10분의1만 핸드볼에 관심을 줘도 올림픽때마다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인기종목으로 바꿀 생각은 안했을까.
박〓가끔 농구나 배구를 했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어요. 하지만 핸드볼의 매력에 빠져 바꿀 엄두도 못냈죠. 핸드볼은 아주 박진감 넘쳐요. 경기 전날에 느끼는 흥분, 그게 매력같아요. 대부분의 선수들의 그것을 즐겨요. 그리고 올림픽은 한번 제패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큰언니(이갑순·신용보증기금)가 농구를 해 아마 다른 운동을 했다면 농구를 했을 거에요.
박〓초등학교때 육상을 했는데 동네 친구가 핸드볼을 하고 있었어요. 항상 내가 먼저 끝나 친구를 기다렸는데 핸드볼 코치가 “너 핸드볼 한번 해볼래”해서 시작했어요. 친구하고 집에 같이 가려고요. 마침 당시 골키퍼가 부상당해 골키퍼로 시작해 대학 2학년때까지 이 포지션을 봤어요.
이〓초등학교 4학년때 운동장에서 뛰어 놀다 갑자기 핸드볼을 하게 됐어요. 당시 꿈나무발굴을 위해 각 학교를 돌아다니는 코치가 있었는데 신체조건이 좋은 저를 발견한 거에요. 안한다고 우겼지만 거의 강제로 하게 됐지요. 칠보초등학교에 다녔었는데 핸드볼부가 있는 정읍 서초등학교로 강제로 전학까지 갔어요. 중학교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도 못지켜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치가 100대를 맞으면 빼준다고 해 50대까지 맞다가 포기했어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이들이 맡고 있는 포지션은 핸드볼중에서도 가장 힘든 곳. 피봇은 센터에서 볼을 받아 배급하는 포지션인데 몸싸움이 심해 한경기가 끝나면 온몸에 손톱자극으로 멍이 진다. 골키퍼는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속 80∼120㎞로 날아오는 볼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맞는다. 이남수는 지난해 실업왕중왕전때 볼에 눈을 맞아 각막이 손상돼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다.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그들이 핸드볼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박〓한번 시작했는데 끝을 봐야지요. 전 연금이 목표입니다. 아시아경기,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딸 거에요. 그런뒤 지도자 생활을 하며 후배를 양성할 겁니다.
이〓힘 닿는데까지 뛴 뒤 핸드볼발전을 위해 일할 거에요. 돈을 많이 벌어 핸드볼을 지원하고 싶어요. 토양이 좋아야 제 자식들이 핸드볼한다고 할때 반대하지 못하죠.
둘은 원광대 체육과 대학원(박민철), 서울산업대 사회체육학과(이남수)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며 비인기종목 핸드볼을 위해 ‘소박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박민철은?
생년월일〓1974년 12월23일
체격조건〓1m91, 81㎏
출신교〓정읍 남초등학교 5학년 핸드볼시작→인상중→이리상고→원광대→원광대 대학원 재학중
국가대표경력〓2000시드니올림픽, 현 국가대표
◇이남수는?
생년월일〓1976년 5월21일
체격조건〓1m74, 66㎏
출신교〓정읍 서초등학교 4학년 핸드볼시작→정읍여중·고→서울산업대 재학중
국가대표경력〓2000시드니올림픽, 현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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