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비스의 전신인 기아 시절 우승을 끝으로 98년 나래(삼보의 전신)로 트레이드되면서 허재의 신화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우승 근처에도 못 간 채 팀 성적이 점점 하강곡선을 그리더니 올 시즌에는 급기야 꼴찌를 헤매고 있는 것.
최고령 현역 허재는 이러다 명예도 회복하지 못한 채 그냥 운동복을 벗는 게 아닌가 초조했던 게 사실.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새로운 의욕을 보이며 은퇴를 무기한 연기했다. 초특급 신인 김주성(2m5)이 29일 열린 2002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보의 지명을 받았기 때문. 그는 “우승 헹가래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운동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허재는 드래프트를 앞두고 ‘제발 김주성을 뽑게 해달라’고 며칠 동안 애타게 기도까지 했다. 농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간절하면 이뤄진다던가. 최대어 김주성과 손발을 맞추게 된 허재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80년대 중반 중앙대와 기아를 거치면서 한기범 김유택 등 국내 최고의 센터와 호흡을 맞춰 최강의 전력을 맛본 데 이어 다시 김주성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을 두고 하는 얘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는 허재는 중앙대 14년 후배인 김주성과 30일 새벽까지 부푼 희망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재는 워낙 타고난 강골이어서 마흔을 바라보는 요즘도 후배들보다 오히려 힘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체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경기마다 25분 정도는 끄떡없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소화할 수 있다”며 “김주성 같은 뛰어난 선수가 팀에 들어왔으므로 팀이 챔피언에 오르는 데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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