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현주엽과 추일승의 '궁합'

  • 입력 2002년 2월 19일 10시 12분


현주엽과 추일승감독이 농구대잔치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현주엽과 추일승감독이 농구대잔치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현주엽, 신기성, 황성인, 강혁, 윤영필 등 프로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상무가 대학팀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다고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회 출전 기회가 적은 상무에게 농구대잔치는 제일 중요한 행사이고, 그 대회를 위해 1년을 준비한다고 해도 심한 표현이 아니다. 상무로서는 사실상 하나밖에 없는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현주엽의 신선한 변신이 그것이다. 본인이 3-40점 넣고 팀이 패하는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고, 리바운드와 헬프 디펜스, 어시스트 등으로 동료를 살리고 있었다. 추일승 감독과의 만남 이후 보다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농구대잔치에서 상무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뛴 덕분이다. 뭐 그런 싱거운 소리를 다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프로에서 나름대로 네임밸류가 있는 선수들이 대학 후배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추일승 감독도 이점을 제일 높이 평가했다. 상대팀을 한 수 내려보고 개인적인 욕심을 낼 수도 있었지만 모두들 팀 플레이를 멋지게 펼쳐 보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것은 현주엽이다. 예선전과 준결승까지 6경기에서 경기당 절반 정도 출장에 15-18득점과 10개 안팎의 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중앙대와의 결승전에선 25득점, 17리바운드에 5개의 어시스트를 곁들이며 이번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거기에 중요한 고비에 확실한 ‘한방’을 터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현주엽이 돋보였다고 느낀 것은 이런 수치상의 기록이 아니다. 리바운드를 잡아내 동료에게 패스하고, 협력수비로 동료의 부담을 줄여주는 등 농구에서 말하는 소위 ‘궂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 때문이었다. 사실 예전의 현주엽이었다면 체력을 안배한다는 이유로 수비나 리바운드는 소홀히 하고 득점이나 어시스트를 도맡았어야 된다. 어쩌면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무에서 보낸 6개월 동안 현주엽은 ‘동료’를 의식하고 있었다. 20kg이 빠져 버린 그의 몸보다도 이런 움직임이 더 낯설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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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부상에 스캔들, 그리고 쓸쓸한 군 입대▼

지난 시즌은 현주엽에게 농구를 시작한 이후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왼쪽 무릎 외측 인대와 십자 인대가 파열됐고, 무릎 아래쪽 뼈가 골절돼 한 동안 깁스를 하느라 절반밖에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거기에 진효준 감독과의 마찰도 힘든 부분이었고, 경기에 나설 만 한데 태업을 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시즌이 끝나고는 더 좋지 못했다. 계속된 구단과의 불편한 관계가 구설수에 오르내리더니, 정밀 검사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던 시기와 맞물려 연예인과 스캔들까지 터졌다.

거기에 부상으로 군복무가 면제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나니 어느 누구도 그의 편에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안좋아졌다. 현주엽은 이런 모든 것을 뒤로하고 조용히 상무로 향했다.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아꼈다. 이때 현주엽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 말을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입대하는 쪽을 택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상무에 있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부상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체력이나 기량 모든 면에서 발전하고 싶다. 제대할 무렵이면 주변 상황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프로에 나서겠다.”

이렇게 논산 훈련소로 향한 것이 지난해 6월 14일이다. 그리고 6주간의 신병 교육. 한 여름에 진행되는 고된 훈련도 물론 힘들었지만 무릎이 더 걱정이었다. 입대 직전까지 재활에 매진했고, 신병교육을 받을 때도 조심했다. 그러나 상무로 올 때까지 무릎은 정상이 아니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물이 차 올라 재활 치료가 몇 달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직 수술 여부도 결정되지 못했다. 길게는 상무 복무 기간 전부를 재활과 치료에 매달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세간에서는 좋지 않은 소리도 많았다. 그가 군에 잘 적응하지 못할 성격이라든지 자기 몸 치료나 하다가 제대하겠다는 등의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사실 그런 것을 핑계로 상무에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상무는 재활 프로그램이 잘 돼 있기로도 유명하니까.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예상은 많이 빗나가 있었다.

“여기서 치료 열심히 하고, 나가서 정말 네가 몸 값하는 선수가 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여기가 무슨 돈을 버는 데도 아니고 네 몸 상하면서까지 뛸 필요가 없다”

현주엽과의 첫 상면에서 추일승 감독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인간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던 추일승 감독은 특별한 성적보다도 현주엽을 맡으면서 부상 완쾌를 제일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현주엽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것이 예상을 많이 빗나간 것이었다.

“내 무릎도 중요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는 상무 복무 기간 동안 많이 달라지고 싶어했다. 정신적인 성숙뿐만 아니라 농구에서도 나아지는 계기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잘 할 필요 없다. 우선 무릎이 더 중요하다”▼

현주엽을 한국프로농구의 희생양이라고 까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명성에 비한다면 지난 3시즌 동안 그가 프로농구에서 거둔 수확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 본 적이 없고 개인 성적도 들쭉날쭉이다.

현주엽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팀이나 “잘하는 선수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팀에 오면 골치 아프다”라는 식의 어색한 반응을 보인다.

지명도나 개인 기량은 뛰어나지만 팀에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현주엽 본인이 잘 알고 있고, 가장 바꾸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은 마음먹은 대로 쉽게 바뀌질 않았다. 왜 있지 않은가. 분명히 알겠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들 말이다. 자존심과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다.

상무에 처음 왔을 때까지 현주엽의 플레이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수비 리바운드를 잡으면 패스를 하지 않고 혼자 드리블로 프런트코트까지 넘어가서 1대1을 시도하고, 마음먹은 대로 안되면 그제서야 패스가 나왔다. 현주엽은 자기가 마무리까지 해야 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 것이다(이런 자기 중심적인 플레이가 프로팀 감독들이 제일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추일승 감독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다. 리바운드 잡아서 동료에게 패스하면 넌 걸어서 가도 된다. 그 전에 속공으로 끝내면 되니까. 속공이 안되면 세트오펜스에서 네가 1:1하다가 어시스트해라”이런 추일승 감독의 지적에 아무 말 못했지만 당시 현주엽은 ‘알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가을, 상무가 한국팀 대표로 출전한 ‘필리핀 내셔널 오픈’에서는 현주엽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뛰면 분명히 이길 수 있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추일승 감독이 더 이상 투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감독이라면 분명히 이기고 싶은 욕심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그 경기에 패하고 현주엽은 추일승 감독에게 자신을 왜 투입시키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그것은 현주엽이 상무에 온 이후 추일승 감독에게 던진 첫 물음이기도 했다.

추일승 감독은 “네가 여기서 잘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네 무릎이 중요하다. 철저하게 출전 시간을 지켜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주엽에게 가장 잘맞는 농구는?▼

‘필리핀 내셔널 오픈’에서 상무는 준우승에 그친 채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현주엽은 추일승 감독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고마움’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믿음이 생긴 것이다.

현주엽이 많은 어려움을 뒤로하고 상무에 오면서 제일 그리웠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믿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농구가 아니어도 다른 재능이 많고, 주위에 사람도 많아서 그 동안의 시련을 어렵지 않게 극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건 그렇지 않건 그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거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바람은 더 간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확히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가 던지는 한마디, 몸짓 하나에는 그 역할을 추일승 감독이 해준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를 가르쳤던 어느 지도자보다도 믿음이 간다. 그는 항상 선수 편에 서있다. 상무가 군 소속이라는 특성상 선수들을 마음대로 부려도 될 텐데 인간적으로 대해준다. 신뢰할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저런 것을 떠나서 현주엽이 몇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런 선수는 농구계 전부에서 아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를 인정해주고 그를 위해 전술을 짜는 것하고는 다른 의미다. 그에게 맞는 역할을 주어 장점이 부각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절실하다.

추일승 감독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에 맞는 농구를 찾아주고 싶어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선배 농구인의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런 마음이 제대로 전달된 것일까? 현주엽은 농구대잔치를 통해 적어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추일승 감독에겐 우승이라는 결과 만큼 흐뭇한 일로 다가왔다.

“부상을 안고 상무에 들어온 현주엽이 열심히 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는 것이고, 재활 치료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스스로 훈련에 매진하고, 게임에 출전해서 열심히 뛰어주니 정말 고마웠다. 현주엽 같은 선수가 팀 플레이를 펼치면 나머지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현주엽은 1월말에 정밀 검사를 받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무릎이 좋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현주엽은 이번 농구대잔치에서 보여준 자신의 플레이에 즐거워하고 있다. 예전의 그라면 가졌을 법한 ‘대학팀을 이겨봐야 본전이다’ 정도의 냉소적인 기분이 아닌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이다.

▼선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추일승식 농구▼

현주엽과 상무 동기인 정훈종(KCC 소속)과 입대 전에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훈종은 당시 상당히 비장했다.

그는 2미터가 넘는 신장 덕에 공익근무 요원 판정을 받았음에도 상무에 가겠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상무를 농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겠다는 것이었다.

정훈종은 잘 알려진 봐와 같이 WKBL 신세계 농구단의 정선민 선수의 동생이다. 그는 205cm라는 좋은 높이를 가지고 있지만 중앙대 시절, 그리고 KCC에서 1년 동안 내내 벤치 멤버였다.

본인 스스로 “그 동안 나는 줄곧 벤치에 있었고, 누나 덕분에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잘하는 것이 없었다. 상무에서 나 자신을 찾고 싶다. 농구 인생을 걸고 피나는 노력을 하겠다”라는 말은 남기고 지난 6월 훈련소를 떠났었다.

그리고 농구대잔치에서 만난 정훈종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팀의 주전 센터로 나와 수비와 리바운드는 물론이고, 미들슛까지 잘 다듬어지고 있었다. 그 비장함이 여전한 것은 물론이다. 앞으로 그가 프로에 돌아와서 얼마나 좋은 활약을 펼칠지는 모르지만 -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상무에서 주어진 2년이라는 시간동안 쉼 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모습만으로도 훨씬 의미 있게 다가 왔다. 이런 모습은 비단 정훈종의 경우만도 아니다. 상무 선수들 대부분 복무 기간 동안 한 단계 더 올라서는 기회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런 참 바람직하다는 느낌까지 들게 하는 장면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대회가 적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은 특수한 상무만의 환경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선수 각자의 개성을 살려주는 추일승 감독의 특별한 지도 방법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틀을 정해 놓고 거기에 선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리면서 팀 전력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선수들 하나 하나에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무의식중 몸에 밴 불필요한 것들 - 말하자면 군더더기를 없애주는 것이다. 진정한 ‘指導者(지도자)’가 무엇인지 새삼 되새겨지는 부분이다.

우리 나라에도 적지 않은 수의 농구 선수가 있고, 그들의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이 선수들은 능력의 높낮이를 떠나서 개개인마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모두 다르다. 작전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선수가 있는 반면 패턴을 유독 잘하는 선수도 있다. 그러니 벤치에서 아무리 좋은 작전을 지시해도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선수에겐 100% 불필요한 것이 돼 버린다. 그런 선수들에겐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것보다 잘하는 플레이 하나만 지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난 8월, 추일승 감독이 상무와 대학 선수들이 주축이 된 한국팀을 데리고 대만 존스컵에 참가한 적이 있다. 준우승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거둔 한국팀 에이스는 예상외로 전병석이었다. 소속팀 연세대에서도 중심이라고 할 수 없는 그가 대표팀에서 제일 좋은 활약을 펼친 것은 추일승 감독이 그에 맞는 플레이를 지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전병석은 흑인과 같은 탄력을 가진 선수로 점프력과 드리블 등 개인기가 뛰어나다. 반면에 패턴은 약하고, 작전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그에게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게 해 주자 현란한 개인기를 마음껏 뽐내며 한국팀을 결승까지 이끈 것이다.

특히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는 드라이빙이나 가능한 위치에서 파워풀한 슬램덩크를 꽂아버리기도 했다. 대만 관중들 웅성웅성거리더니 모두 전병석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추일승 감독은 이렇게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그것이 모두 선수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상무에는 벤치 멤버가 없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상무는 특별한 곳이다. 1년 동안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농구대잔치와 전국체전 단 2개밖에 없고, 그나마 겨울 농구대잔치가 끝나면 가을까지 전면 휴업이다. 어떻게 보면 참 열악한 환경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프로에 있으면서 이래저래 부상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선수들에게는 치료를 하거나 기량을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고, 추일승 감독에게는 보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셈이니까.

추일승 감독은 지난 봄 ‘WINNING DEFENSE(월간 점프볼 출간)’라는 책을 발표했고, 앞으로 수비에 관한 책을 하나 더 쓸 계획이다.

이번엔 보다 비주얼한 연출을 위해 디지털 카메라도 구입해 놓은 상태다. 모델은 물론 현역 상무 선수들이다. 거기에다 상무는 대학 출강(한국체대) 시간까지 보장해 주었다.

그가 만일 프로팀 감독이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공부를 좋아하는’추일승 감독이 상무에 좀더 머무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상무 경기를 보면 선수교체를 참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 경기를 치르면 보통 2,3명의 선수만 교체시키는 다른 팀들과 달리 12명의 선수가 모두 코트에 나온다. 물론 모두 이유가 있는 기용이다. 추일승 감독은 상무에서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 프로에서 빛을 못 본 선수들이 한 단계 올라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기본적으로 선수 모두에게 출전 기회를 고르게 주는 것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상무는 1년 동안 뛸 수 있는 경기가 얼마 없다. 거기에다 상무는 특정 선수만 출전시킨다면 나머지 선수들에게 자기를 연마할 수 있는 동기 유발이 되겠는가?”상무 선수들은 주전 비주전 구분 없이 추일승 감독이 지시하는 것을 코트에서 보여주고 벤치로 돌아온다. 자신이 팀의 중심이어서 더 뛰어야 했다 라는 식의 불만은 없다.

추일승 감독이 늘 자신들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현주엽이 너스레를 떨었다. “선수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기회를 줘서 그게 불만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가 더 뛰어야 하는데 좀 덜 뛰었다 뭐 그런 거죠. 다른 팀에 있었다면 제대로 코트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면서 말이죠. 헤헤”

그리고 지난 1월 16일 중앙대와 농구대잔치 결승전이 있었다. 상무는 2쿼터까지 47:34로 뒤졌고, 중앙대 선수들의 움직임이 워낙 좋아 패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하프 타임에 추일승 감독은 선수들에게 “점수에 연연하지 마라. 한번만 흐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면 잡을 수 있는 경기다.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라는 믿음을 주었고, 코트에서 그대로 실현됐다. 3쿼터에 선수들이 조급하게 덤볐다면 놓칠 수도 있는 경기였지만 모두들 추일승 감독의 말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이처럼 상무 선수들은 추일승 감독을 신뢰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그의 말대로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경기에 나선다. 그것이 상무의 힘이고, 어떤 특별한 전략보다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최국태 기자/gen69@jumpball.co.kr

(제공:http://www.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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