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산악스노보드에 빠진 김은광씨

  • 입력 2002년 3월 5일 17시 38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남쪽에 있는 로체봉(8516m)의 7000m 기슭.

스노보드에 몸을 싣고 일어서는 순간 선채로 수직방향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급경사의 절벽 위에 얼어있던 얼음 때문에 스노보드가 말을 듣지 않아 회전이 되지 않았다. 40m 아래로 미끄러져 가면서 “이제 죽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아래에는 깊이 200m 의 크레바스(얼음이 갈라진 틈)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던 스노보드는 크레바스 바로 앞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회전이 되어 옆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크레바스 입구에 쌓인 약간의 눈 둔덕 덕택이었다.

“히말라야에 올라가면서 흘린 땀보다 그 한 순간에 흘린 식은 땀이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2001년 4월. 히말라야 14개 고봉을 완등한 한국 최고의 산악인 박영석씨를 졸라 히말라야 원정대에 끼어 7000m에서 6000m까지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온 익스트림 스노보더 김은광씨(34).

그는 익스트림이라는 말 그대로 극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모험스포츠를 즐긴다.

“눈만 있다면 나무와 돌들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스피드 조절이 필수죠.” 빠른 속도감, 장애물을 피하는 순간의 통쾌함, 커브를 돌 때의 발목에 오는 짜릿한 느낌 등이 그가 드는 쾌감.

하지만 역시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장 크다”고 했다. 그렇지만 목숨이 위험하니 언제 죽을지 몰라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다. 자녀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가 스노보드를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인 91년. 그 전에는 복싱과 유도를 즐겼다. 4전5기의 신화를 남긴 전 프로복싱 WBA주니어페더급 챔피언 홍수환씨가 외삼촌.

하지만 대학시절 친구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처음 접한 뒤 스노보드에 청춘을 모두 바치고 있다.

“당시 스노보드가 국내에 생소했는데 남들이 안하는 스포츠를 한다는 것에 신이 났죠.”

그는 95년 어학연수겸 캐나다로 건너갔다가 아예 현지 스노보드팀에 찾아가 전문적인 스노보드 훈련을 한 뒤 프로 스노보더가 되어 각종 대회 참가했다. 그러나 대회참가만으로는 성에차지 않은 걸까.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산악스노보드를 시작했다. 지난해 히말라야 로체봉과 백두산에 올해 1월과 지난달에는 한라산과 설악산에서 스노보드를 했다. 정상 부근까지 몇시간에서 며칠씩 걸어 올라가 산중턱에서 짧게는 40여초, 길게는 한두시간 정도 타고 내려왔다.

어찌보면 허무할지도 모를 일을 왜 목숨을 걸고 하는가. “짧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즐기면서 최고로 양질의 삶을 살기 위해서죠” 그의 최종 목표는 에베레스트다. teamwilliam@yahoo.com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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