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日 홈런타자 이야기(1)

  • 입력 2002년 3월 6일 16시 17분


작년 킨테츠의 터피 로즈(본명 Karl Derrick Rhodes)는 신기록 작성에 실패했지만 일본 타이인 55홈런을 기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 그럼 이전 33세 홈런 기록은 누가 가지고 있었을까? 정답은 오오 사다하루(王貞治). 아래 등장하는 나이는 그 해 12월31일 현재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17세 - 1개, 카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

1950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프로에 뛰어든 카네다는 그 해 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물론 그의 포지션은 투수. 400승을 하는 동안 총 3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참고로 투수로 한 시즌 최다 홈런은 후지모토 히데오(藤本英雄)가 기록한 7개이다.

18세 - 27개, 토요다 야쓰미츠(豊田泰光)

1953년 니시테츠에 입단해 첫해 27개의 홈런을 기록, 18세 홈런기록을 세우며 신인왕까지 수상했다. 이후 코쿠테츠(1963년) - 산케이(1965년), 아톰즈(1969년) - 유니폼을 입었으며 통산 홈런은 263개이다. 타격왕에 오른 적은 있으나(1956년) 홈런왕에 오른 적은 없다. 도루 역시 통산 215개를 기록할 만큼 준족이었으며, 1968년 두 게임 연속 대타 끝내기 홈런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은퇴 후 킨테츠 코치를 맡았던 그는 현재 해설가로 맹활약 중이다.

19세 - 31개, 키요하라 카즈히로(淸原和博)

데뷔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던 세이부 라이온즈의 신인 4번 타자 키요하라 카즈히로는 1986년 무려 31개의 홈런을 기록. 프로 16년을 뛰며 통산 442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으나 토요다와 마찬가지로 단 한번도 홈런왕에 오른 적이 없다. 비단 홈런 타이틀 뿐 아니라 제대로 된 메이저 타이틀을 따본 적이 없는 그는 작년에도 타점왕을 노렸지만 아깝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 30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 타율, 홈런, 타점의 타이틀을 한번도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마츠바라 마코토(松原誠), 이케야마 타카히로(池山隆寬), 그리고 키요뿐이다. 그러나 그가 스타 중의 스타라는 사실은 올스타 게임에 100타석 이상 출전한 타자 중 역대 최고인 3할9푼의 타율을 마크하고 있다는데서 잘 드러난다. 188cm, 104kg의 슬러거 체구를 자랑하며 1997년부터는 꿈에 그리던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있다. 1967년 생으로 아직 힘이 있는 그는 입단 이후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여성문제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고 야구에 전념한다면 훗날 통산 홈런 기록에 이름을 남길 것임에 분명하다. 계속 "토코로자와의 종마(所澤の種馬)"로 활동한다면 메이저 타이틀 획득은 더욱 요원하다.

<키요하라! 한국계!?>

지난 컬럼이 올라간 이후 '키요하라는 분명 한국계이다'라는 메일을 꽤 많이 받았는데 실제로 국내에 발간된 야구도서 중에도 키요하라를 확실한 한국계라 소개한 책이 있다. 지난 컬럼에서 마치 그가 한국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던 것처럼 보였는데, 본인은 굳이 본인이 밝히기 꺼려하는데 그것을 들출 필요가 있느냐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 키요하라는 한국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그의 성인 淸原(키요하라)는 일제시대 당시 청주 한(韓)씨 성이 개명한 것이다. 이(李)는 光山, 신(申)은 平山으로 각각 개명되었는데 이 모두 성씨의 지명을 근간으로 한 개명이었다. - 물론 키요하라라는 성은 본래 일본에 있던 성이지만 그리 흔치 않은데 재일사회에서는 꽤 자주 볼 수 있다 - 또한 그는 한국계가 많기로 유명한 오사카의 키시와다(岸和田) 출신이며, 카네모토, 이케야마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결정적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86년에 쿠와타를 지명한 것은 키요하라가 한국계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데 훗날 키요하라를 품에 안게 되면서부터는 앞서 그의 출신을 감추려 애쓴다고 한다. 이 모두 '설'들을 종합한 것으로 여전히 그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지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엄연히 일본인이다.

20세 - 36개, 나카니시 후토시(中西太)

코시엔의 스타였던 그는 1952년 니시테츠에 입단하여 그 해 12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듬해 20세의 나이로 36개의 홈런을 쳤으며(리그 수위) 이후 내리 4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니시테츠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으로 특히 위에 등장한 토요다와의 콤비는 대단한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사실 그는 두 차례 수위타자, 세 차례 타점왕을 차지하기도 하여 때만 잘 맞추었다면 양 리그 분리 후 최초의 3관 왕에 오를 수도 있었다. 1962년에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29세의 감독데뷔, 1969년까지 감독 겸임을 했다. 4년 연속을 포함하여 다섯 차례 홈런왕에 오르며 통산 244홈런을 기록하였으며, 4년 연속 홈런왕은 역대 3위의 기록이다. 또한 1958년 미일 야구대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서는 대타 만루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가 보여준 타구의 속도와 질을 감안할 때 조금만 늦게 데뷔했다면 훨씬 많은 홈런을 양산 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사실 미야케 노부카즈(三宅伸和)를 포함한 많은 3루수 출신 OB들은 나가시마 시게오(長島茂雄) 대신 나카니시를 최고의 3루수로 꼽고 있다.

21세 - 31개, 나카니시 후토시(中西太), 마치다 유키히코(町田行彦), 키요하라 카즈히로(淸原和博)

마치다는 1952년 최약체 코쿠테츠에 입단하여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입단 4년째인 1955년에 3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31개의 홈런은 그의 한 시즌 최다홈런이었다. 1959년에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으며, 14년의 선수생활 동안 총 129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선수생활 마지막 해에는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라이온즈 소속의 나카니시와 키요하라는 입단 3년째에 나란히 31개의 홈런을 기록. 여담으로 키요하라가 세이부에 입단하여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고 있을 때 우연히 그를 보게 된 나카니시는 "볼을 끌어당겨치는 능력이 탁월하다. 분명히 大物이 된다"고 장담. 키요하라는 라이온즈 선수 중 최다인 329개의 홈런을 마크했다.

22세 - 38개, 오오 사다하루(王貞治), 마츠이 히데키(松井秀喜)

고교시절 괴물투수였던 오오는 외다리 타법을 몸에 익힌 입단 4년째에 38개의 홈런을 쳐내며 홈런왕에 등극, 이후 은퇴하던 해까지 시즌 30홈런 아래로 내려가본 적이 없는 미증유의 홈런기록을 세웠다. 나이별 홈런 기록에서도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홈런왕을 총 15차례 수상하며 쌓아올린 홈런 숫자는 총 868개. 일본시리즈에서 29개, 올스타전에서 13개, 미일 야구대회에서 23개, 오픈전에서 99개, 모두 제1의 기록들이다. 1974년 미일 야구대회에서는 행크아론과의 홈런 더비가 벌어졌는데 10:9로 행크 아론의 승리. 작은 코라쿠엔 구장을 홈으로 썼던 그의 기록을 비하하려는 노력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그의 통산 장외홈런은 29개이다. 얼마 전 아내와 사별한 사건은 일본내의 커다란 이슈였는데 아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스포츠지의 단신으로 처리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긴 오오는 일본 국민영예상 1호 수상자이다.

고교시절 5연타석 고의사구의 주인공이었던 마츠이는 입단 5년째에 38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홈런 비거리는 매우 큰 편인데, 데뷔 이후 토쿄돔의 간판을 직접 맞추는 140미터짜리 홈런을 총 아홉 차례 기록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오오의 기록 경신까지 587홈런이 남았지만 과연 일본에 잔류할지 의문이다. 만일 일본에 남는다면 그는 홈런 신기록 이외에 또 하나의 기록을 노릴 수 있다. - 1993년 이래로 전경기에 출장. (1100경기, 역대 4위)

23세 - 40개, 오오 사다하루(王貞治), 아키야마 코지(秋山幸二)

아키야마는 드래프트 외로 세이부에 입단하여 처음 레귤러로 뛰게 된 1985년에 4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 해 포함 3년 연속 40홈런 이상, 이후 1993년까지 매해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199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홈런왕과 도루왕을 차지. 1994년에는 고향팀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했다. 물론 그 트레이드는 본인이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었지만 쿠마모토 출신인 그로서는 고향팀으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이부 구단 최다홈런이 키요하라의 329개라고 밝혔는데 아키야마가 블루 유니폼을 입고 때린 홈런의 수는 328개였다. 2000년에는 2000번째 시합에서 2000안타를 기록(8월19일), 2000안타의 금자탑을 이룸으로써 다이에 선수 중 최초로 명구회에 가입했으며 통산 432홈런은 현역으로 라이벌 키요하라에 이은 2위이다. 공, 수, 주 3박자를 갖춘 등 번호 1번은 올해도 달린다.

24세 - 55개, 오오 사다하루(王貞治)

25세 - 44개, 오스기 카즈오(大杉勝男)

1965년 토에이에 연습생으로 입단하여 4년째에 34홈런을 기록했으며 그 해 포함 6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는데 44개의 홈런은 입단 6년째는 1970년에 기록한 것이다. 양리그에서 1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타자로 남아있다 - 퍼시픽리그에서는 토에이(닛타구홈, 니혼햄), 센트럴리그에서는 야쿠르트에서 활동했다. - 토에이 시절 장 훈과 한 팀에서 플레이하며 각별한 사이로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총 두 차례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통산 홈런인 486개는 역대 8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많은 홈런을 친 타자답게 1969년 5경기 연속 홈런, 1973년 6경기 연속 홈런 등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2년 급사했다.

26세 - 48개, 오오 사다하루(王貞治)

27세 - 47개, 오오 사다하루(王貞治)

28세 - 52개, 노무라 카츠야(野村克也)

무려 27년 - 입단 2년째에는 1군 경력이 없음 - 을 플레이 한 대타자이자 달맞이꽃(月見草, 나가시마의 해바라기(ひまわり)에 빛 댄 표현), 그리고 인재재생, 인재활용(人材再生, 人材活用)을 적극 실천하는 사람. 1954년 난카이 호크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하였으며 175cm의 단신임에도 불구 통산 657홈런은 오오에 이은 역대 2위의 기록이다. 물론 우타자로는 1위. 28세 홈런 기록인 52홈런은 입단 10년째인 1963년에 때려낸 것인데, 홈런왕에 총 아홉 차례 올랐으며 양 리그 분리 후 첫 타격 3관왕(1965년)에 오르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통산 100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이며 외야수나 1루수가 아닌 포수라는 점은 더더욱 놀라울 뿐이다. 물론 츠루오카 카즌도(鶴岡一人)라는 감독이 없었다면 노무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선수 생활 때 이미 난카이의 감독을 겸임했던 그는 이후 야쿠르트와 한신 감독으로도 맹활약했다. 한편 뛰어난 실력과 자기관리능력에도 불구하고 야구실력 외적인 부분에 좌우되어 오오나 나가시마에 비해 저평가 받는 부분은 절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무라가 그 둘보다 명백히 잘못한 일은 현재 그의 부인을 만났다는 것 뿐. 심지어 후루타가 - 노무라가 길러낸 - 더 뛰어난 포수라는 평가를 받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29세 - 46개, 니시자와 미치오(西澤道夫)

전전(戰前)이던 1936년 선수난에 허덕이던 나고야 구단이 소년 선수를 직접 키운다던 양성선수(養成選手) 제도를 통해 입단한 니시자와. 1937년부터 투수로 활약하며 1940년에는 20승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1942년에는 그 유명한 타이요전에서의 28회 완투경기 주인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 도중 참전을 하였으며 계속 무리하게 투구한 탓에 어깨와 팔꿈치에 부상을 당해 더 이상 투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니시자와의 재능은 타격으로 옮겨져 1949년에는 39홈런, 1950년에는 46개의 홈런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1948년 25경기 연속안타, 1950년 한해 만루홈런 5개, 1954년 5게임 연속 맹타상 등의 기록은 물론, 1952년에 수위타자에 오르며 타점 타이틀까지 땄고, 팀이 우승하던 1954년에는 .341을 쳤다. 통산 홈런은 212개이며 그의 등 번호 15번은 주니치 구단 첫 영구결번이 되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주니치 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감독으로서의 그는 낙제였다.

30세 - 49개, 알렉스 카브레라(Alex Cabrera)

베네주엘라 출신의 강타자. 185cm, 100kg의 체구 및 47cm의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홈런포는 가히 충격적이다. 메이저리그(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멕시칸리그, 대만리그 등을 경험했으며 작년부터 일본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2001년 시즌 38경기 만에 20홈런을 쳐내 이 부분 신기록을 작성하였으나 여름 이후에 초반 페이스를 이어가지 못해 홈런왕은 로즈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홈런 70개보다도 팀의 우승이 더 절실하다"라고 발언. 더블A 엘파소 시절에는 56경기에서 35홈런을 치며 .986의 경이로운 장타율을 기록한바 있다. 홈런 비거리도 최고, 삼진수(지난시즌 150개)도 최고. 카브레라 이전 30세 홈런 기록은 오오 사다하루의 47개였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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