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찬호예찬

  • 입력 2002년 3월 29일 16시 52분


근자에 들어 찬호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는 지난 몇차례의 시범경기에서 전혀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늘은 햄스터링이란 생소한 용어를 국내팬들에게 소개했다. 걱정인가? 아니면, 당신의 예상이 조금씩 맞아가는가? 이 글은 조금은 야구 외적인 이야기다. 적당한 용도는 게시판이겠지만, 찬호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한번은 내고 싶었기에 칼럼란을 빌리기로 한다.

당신은 박볼, 박빠, 박까란 단어를 들어본적이 있는가?

소수의 문화에서 주류로 진입한 MLB 메신저 역할을 자행해온 그에게 이제는 주류의 축이 되길 원하는 조금은 과한 애정이 빚어낸 말들이다. 꾸준함이란 당장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항목이다. 꾸준함이 일상이 되면, 사람들은 화려함을 원한다. 9년째 심심하면 스포츠지 대문을 장식하는 그의 얼굴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어서일까? 우리에게 처음 신세기를 열어준 친구가 이제 최고에서 아주 조금 미진하다는 이유로,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를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선진리그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확실히 월드와이드웹을 성공시켰다. 선진야구에 관한 독특한 체험은 다양한 채널로 우리네 본능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김병현, 박찬호 주연의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 '반지의 제왕' 'wild wild west' 에서 선수 개개인의 디테일한 소재를 다룬 'BATMAN FOREVER' 까지, MLB사의 블록버스터들은 분명 "재밌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수요가 증폭되면서 질 좋은 공급물을 표방하는 무리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MLB 극장과 놀이터를 찾는다. 찬호만 MLB에서 야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우리들은 때로는 애정과 애증의 한끝차이로 보다 많은 요구사항을 원하고 화려한 슈퍼맨을 찾기도 한다.

사실 안티 park을 만든 8할이 국내의 스포츠지나 소위 말하는 '박빠'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찬호에 대한 과한 애정에서 출발한 비논리는 우악스러움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고, 보다못한 일부 지인들은 (이사람들은 훗날 박빠로 불리게 된다) mlb 바로보기 운동을 태동시켰다. 좋은 일이고, 바람직하다.

못내 아쉬운 것은 이러한 재조명 의도가 초기의 탄생배경을 외면한 채, 한 두번의 리플 뒤에 무조건적인 동조를 강제하는 계층의 이원화작업으로 변질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의 스포지가 찬호를 우상화 한다면, 작금의 안티들은 MLB를 너무도 신성시하고 있다. 구태의연하지 않은가?

필자는 스포츠지 중 유일하게 박찬호 관련기사는 거의 100%믿는다.

그들은 찬호가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는 지극히 축복(?)받은 몇 안되는 한국인들이다. 다소간의 과장이나 환호작약이 눈에 거슬려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명의 해설자와 한명의 캐스터가 전해주는 감동이 고작인 것이다. 게다가 박찬호 기사는 여타의 것들에 반해 비교적 전문성이 있다. 하기사, 1면 최다출연자에게 붙이는 재원이 영어성적만으로 착출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여기서 나는 찬호기사는 믿으라 말하고 싶은건가? 미 언론의 텍사스에 관한 칼럼과 기사를 뒤져 단 '한줄'의 박에 대한 언급을 '한면'으로 확장하는 그 방대한 상상의 나래를? 그렇다. 그는 MLB에서 일개 이방인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위대한 정복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척자임은 확실하지 않은가? 지금의 신세기는 상당수가 그가 닦아 놓은 길이다.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면 가끔은 초심으로 돌아가, 투수 랭킹 50위에 분노하고, 19승 예측에 감동받길 원하는, 그러면서 찬호의 우수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절대찬호' 중심의 자료들을 즐기라 말하고 싶다.

찬호보다 위대한 투수는 많다. 찬호보다 터프한 구속을 자랑하는 선수들은 에이(A)자 들어가는 리그에도 지천이다. 또 한국의 스포츠지보다 더 흥미롭고 보다 객관적인 현지의 스포츠 채널도 이제는 마우스 몇번 까딱여서 무난히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은 고백컨데, 샌디 쿠팩스란 전설을 94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난 지금 찬호를 쿠팩스와 라이언의 계승자라 굳게 믿고 있다.

나의 선진야구는 찬호가 키웠고, 찬호로 인해 살이 붙었다. 많은 분들이 못마땅해 하시는 스포츠 소설도 찬호가 주인공이라면, 필자는 충분히 읽고 싶다. 그는 나에게 야구를 통해 미국 지도를 알려 준 사람이다. 난 애국자라서 찬호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지난 몇해동안 그로 인해 행복했다. 그것은 찬호만이 배달해줄 수 있는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미 언론은 박찬호를 다저스 스타디움에서만 호투하는 홈보이로 낙인찍고, 에이스가 아닌 '그냥' 1선발이 극단적인 All Offence/No Defense 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몇 개의 추가승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하고있다. 그들 눈에 그렇게 비춰졌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내눈에도 어느정도는 그렇다. 허나, 설사 '운동선수' 3명과 맞장떠서 한번을 못이긴들 어떠한가? 그가 없다면 운동선수3명의 눈코입이 제대로 달려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도 휠씬 더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 머, 그 복잡한 절차들마저 찬호로 인해 많이 간소화 되긴 했지만 말이다.

필자는 올 시즌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디비전 시리즈 5차전, 2사만루, 풀카운트에서 양키들의 상징인 지터를 '룩킹삼진'으로 돌려세울 때 머리를 쥐어짜는 뉴욕커들을 보고싶다. 그들의 외마디 비명 "oh~no!"

그리고 이런 허황된(?) 생각들을 할 수 있게 해준 그에게 항상 감사하다.

9년전 태평양을 건너간 그가 오늘날의 텍사스 에이스가 맞는가? 당시 그 청년이 지금 퍼지-rod 와 A-rod를 등뒤와 눈앞에 두고 야구하는 사람과 동일인이라면, 그는 나 같은 사람이 감히 머라 평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투수, 그리고 인생이 아니다. 때로는 과감한 쓴소리가 좋은 보약이라고 반문하는가? 지금도 그의 인터뷰는 언제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굿 게임'이라는 말로 운을 띄운다. 그는 '나를 만드는 건 내자신' 이란 카피를 아직 잊지않고 있다. 나는 찬호를 염려하시는 분들께 "찬호는 찬호의 환경이?quot; 란 말을 해주고 싶다. '자신과의 약속을 가장 잘키는 사람,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사람' 이라는 찬호 내면의 환경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찬호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쓴소리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아주 자주적인(?) 사람이다. 구속이 안나오는 이유만으로 에이스 자질론이 고개를 든다. 그를 좀 내버려 두자.

물론 이런 것들은 능력과는 별게다. 20투수가 되기 위한 커맨드가 없다고? 변화구 제구로 동료를 미친 게 만든다고? 할말없다. 그러나 난 아직은 CY award가 없는 찬호가 더 좋다.

그가 밟아갈 계단들과 그가 수확할 청춘의 열매를 구경하는 것보다 더 큰 오락과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찬호는 우리와 함께 에너지를 주고 받는 동조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어도 나에게는 비슷한 연배의 젊은이가 거둔 성공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보다는 그의 진지함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아직은 더 앞선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나도 '박빠'인가 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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