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마구잡이식 비판과 주니어(Jr.)딜레마

  • 입력 2002년 4월 15일 15시 36분


앞으로 어느 한 팀의 일반적인 독주는 상당히 드문 일이 될 것이다. 특히, 다른 스포츠 보다도 축구에서는 ‘영원불멸’ 이라는 수식어가 팀에게 붙여지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전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하우와 방법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첨단화된 장비와 시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평준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외를 불문하고 연승과 우승을 거듭하면서 톱 클래스를 꾸준히 유지하는 팀들은 분명히 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공통점은 선수들의 기량과 지도자의 용병술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팀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 것은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선수들이 만났을 때이다.

선수자원이 확보되어야 전술이 있을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한 작전을 구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코칭스태프의 능력은 두 번째 문제다. 일단,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가 뭐래도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는 것이다.

절정의 경기력을 보이던 팀들도 선수들의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한 전력이탈 그리고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이동을 피할 수 없다. ‘뉴페이스’가 등장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승승장구 하던 팀도 어느 순간 한자리 씩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전력과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 만다. 장기간, 정상급의 전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 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팀 전력유지의 핵심은 좋은 선수들의 지속적인 등장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면 ‘세대교체’ 라는 것을 감행하게 된다. 대표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 시대를 휩쓸던 멤버들도, 환상적인 공격루트도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변화가 이뤄지지 못하면 사태는 복잡해진다. 체질개선 보다는 응급조치에 가까운 세대교체는 시행착오라는 엄청난 출혈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프로 팀의 동계훈련과 같은 집중적인 트레이닝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팀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표팀이건 아니건 간에 좋은 선수들을 끊임없이 수급 하는 방법으로 예비 멤버들을 육성하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유망주 발굴에서부터 개인능력, 전술 이해력 향상을 위한 트레이닝,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 마련까지 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과 과정이 필요한 것이 선수육성 이다.

차두리, 현영민, 조성환, 조병국에 이어 월드컵을 40여일 앞둔 상황에서 청소년대표 최성국, 정조국과 대학을 중퇴하고 올해 프로에 데뷔한 박요셉과 손대호가 대표팀에 합류했다. 팀의 집중력을 극대화 해야 할 시기에 신인급 선수를 대거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나, 당장 코 앞에 닥친 본선 무대에서 이들의 활약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다음 월드컵 대표로 선발될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 이기에 선수단에 합류 시켜 그저 분위기나 좀 맛보라는 차원일 것이다.

89년 이야기다. 당시 이태리 월드컵 대표팀은 고려대와 연습경기를 치렀다. 경기결과는 4-4 무승부. 당시, 기막힌 프리키커라는 소문만 무성했던 홍명보는 이 경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며 이회택 감독에 의해 대표팀에 발탁됐고, 대학생 신분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최종 수비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한 나라의 축구를 이끌어갈 선수는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우연치 않게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잠재력이 있는 선수도 주위의 환경과 도움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세계적인 선수로서의 성장은 고사하고 팬들의 시선 조차 끌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멤버구성은 이해할 수 있는 선수선발 임에 틀림없다. 가능성과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다시 한번 점검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현재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생활자세나 훈련태도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기량적인 문제는 그저 덤으로 얻었으면 하는 기대일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 대표팀의 위치를 감안하면 열심히 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선수발탁과 기용에 대한 여론의 의견을 살펴보려 오랜만에 몇몇 축구사이트와 매체를 돌아보면서 느낀 심정은 ‘풍토에 대한 자괴감’ 이었다. 정말 새삼스러운 재발견일 뿐이었다. 차두리라는 어린 선수 하나를 볼모로 정말 다양한 테마로 여러 사람들이 ‘억울함’ 을 호소하고 있었다. 멕시코신화를 달성한, 그래도 한국 축구계에서 한 획을 근 ‘어른’ 이라는 분이 ‘누군가 차두리 기용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며 불만을 터트린 데 이어 어느 사이트 게시판에는 ‘두리 때리기’ 라는 타이틀이 등장했다. 또 어느 스포츠신문에서는 일주일 가까이 차두리 발탁과 탈락에 대한 찬반투표가 한창이다.

선수에 대한 기대와 비판이 폭 넓은 공감대와 객관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 보다 좋은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은 없다. 그러나, 게시판 내용은 ‘막가파식’ 인신공격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제도권 매체 또한 방향을 잃고 대중을 상대로 ‘획일적 바람몰이’에 여념이 없어보인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심안과 혜안을 내놓아야 할 어른이 이제 갓 성인을 넘긴 선수를 상대로 비수를 꽂고 있고, 덩달아 매체와 팬 모두 휩쓸려 그들만의 ‘공개재판’ 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객관적이건 주관적이건 간에 선수의 경기내용과 생활에 대한 근거 있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측면 지역에서 개인기를 활용해 볼을 빼앗기지 않지만 전방으로 넘겨주는 타이밍이 늦어 실속이 없다’ 는 식의 지적은 선수로서도 뜨끔한 지적이다. 어지간한 대표선수 역시 인터넷 없이 생활할 수 없는 시대에 이런 식의 충고라면 분명히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차두리를 놓고 벌이는 설전은 표현의 자유, 익명의 자유가 아니다. 말초적 즐거움을 위한 관음증에 가깝다. 사이트 게시판이 자신들의 막연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화풀이 센터’ 가 돼버렸다. 긴 말 필요 없이 단지 ‘팬 답다’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좀더 깊이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하고 싶을 뿐이다.

필자는 차두리와 일면식 한번 없는 사이지만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지켜본 축구 팬이다. 차두리가 그냥 좋아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은 아니다. 관심을 갖고 있는 선수들 중 한명 일 뿐이다. 경기장 뿐만 아니라 필자 생활범위가 팀 훈련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연습 태도와 자세 또한 비교적 많은 시간 지켜볼 수 있었다.

몇 수위의 선배들과 호흡한지 이제 반년이 지나갔다. 보통 선수들이 갖을 수 없는 엄청난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고, 기량 역시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막연한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선수생활기간 동안 청교도적인 생활이 가능한 선수라고 필자는 느꼈고, 연습이고 시합이고 ‘착하게’ 하는 플레이 스타일 탓에 손해도 많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태교부터 지금까지 오직 ‘축구’일 수 밖에 없었던 환경 탓이었는지 연습만으로 향상될 수 없는 좋은 능력을 가진 선수다. 물론 큰 단점도 있다. 축구전문 기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소문도 들었고, 스포츠의학에도 관심이 있다는 보도도 접했다. 운동선수에게 차선책이 있으면 험난한 선수생활보다는 차선책을 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때 선수로서의 개인적인 기대를 포기하자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드러난 단점 보다 보이지 않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여전히 더 큰 선수이기에 필자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어수선한 주변상황은 큰 선수가 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로 생각하고 묵묵히 연습에 전념해 주길 바란다. 경기 외적인 면에서, 보다 의연하게 대처하여 지금 겪고 있는 답답함과 억울함 그리고 그 마음고생을 야생마적 기질과 불 같은 승부근성 그리고 사생결단의 투혼으로 변화 시켜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후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한국 축구에 크게 보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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