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김동성 싹쓸이'는 스포츠과학의 승리

  • 입력 2002년 4월 16일 11시 34분


김동성 선수가 세계 선수권 500m 결승에서 선두로 질주하고 있다.
김동성 선수가 세계 선수권 500m 결승에서 선두로 질주하고 있다.
김동성 선수의 값진 금메달 뒤에는 한국 스포츠 과학자들의 땀이 어려 있었다.

최근 2002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성 선수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한(恨)을 풀며 6관왕에 올랐다. 이 금메달에 국내 스포츠 과학자들의 연구가 큰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의 스포츠 과학이 가장 빛난 분야는 500m 단거리였다. 사실 이 종목은 국내 선수들에게 가장 취약한 종목이었다. 500m 승부의 80~90%를 차지하는 스타트에서 국내 선수들이 세계 수준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단은 다른 종목에서는 금메달을 많이 땄지만 500m에서는 몇 년 동안 메달은 커녕 결승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백진호 이순호 박사팀은 몇차례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말 새로운 스타트 기술 을 개발해 이번에 비장의 무기로 선보였다.

김동성 선수의 예전 스타트 모습. 왼발을 살짝 앞으로 짚은 뒤 오른발을 내딛어 출발한다.
그동안 국내 선수들은 스타트를 할 때 앞에 놓인 왼발을 반걸음 정도 살짝 옮겨 축을 만든 후 오른발을 힘차게 내딛었다. 그러나 김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총성이 나자마자 오른발을 바로 내딛으며 스타트를 펼쳤다. 대신 스타트 자세를 잡으며 왼쪽 스케이트 날을 빙판 위에 꼿꼿이 세워 중심축을 만들었다.

김동성 선수의 개로운 스타트 모습. 바로 오른발을 내딛기 때문에 스타트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백 박사는 ˝새로운 자세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뿐 아니라 몸의 중심이동 속도가 빨라져 스타트 때 앞으로 뛰쳐나가는 추진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스타트 방법을 사용한 뒤 김 선수는 500m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처음 14m(출발 지점에서 처음으로 곡선 주로에 들어서는 거리) 구간에서 0.1초를 앞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지만 거리로는 40㎝나 차이가 나 다른 선수들을 충분히 제칠 수 있는 시간이다. 김 선수는 이번 500m 결승에서 스타트부터 선두로 나서며 끝까지 1위를 고수했다.

대학에서 역학을 전공해 스포츠 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백 박사는 모눈종이처럼 컴퓨터에 3차원의 가상 공간을 만든 뒤 김 선수의 움직임을 옮겨와 분석하는 등 새로운 자세를 다듬었다. 새 스타트 기술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당시 경기장의 빙판이 맞지 않아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마침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로 열매를 맺었다.

백 박사는 ˝김 선수가 워낙 근력이 좋아 스타트 기술을 잘 소화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공을 돌렸다. 그러나 전명규 쇼트트랙 국가대표 감독은 ˝취약했던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스타트 기술의 도움이 컸다˝며 과학자들에게 고마워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과학적인 체력 훈련도 큰 몫을 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해 상반기 연구원에서 체력 평가를 받았다. 이 평가에서 이승재 선수(남)와 박혜원 선수(여)는 좌우 근력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동성 선수도 다리의 굽히는 힘과 펴는 힘의 균형이 나빴다.

백 박사는 ˝이들의 자세를 분석해보면 뒤뚱거리면서 스케이트를 탄다˝며 ˝선수들이 말만 하면 잘 몰라도 과학적인 기록을 보여주면 다 알아듣고 스스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부족한 부분을 고친다˝고 말했다. 꾸준한 강화훈련 결과 이승재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박혜원 선수는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각각 계주 금메달을 따냈다.

백 박사는 ˝앞으로는 과학적인 훈련이 승부를 좌우한다˝며 ˝다른 나라가 곧 우리의 신기술을 따라하겠지만 우리도 계속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쇼트트랙 최강국의 명성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상연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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