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02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성 선수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한(恨)을 풀며 6관왕에 올랐다. 이 금메달에 국내 스포츠 과학자들의 연구가 큰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국의 스포츠 과학이 가장 빛난 분야는 500m 단거리였다. 사실 이 종목은 국내 선수들에게 가장 취약한 종목이었다. 500m 승부의 80~90%를 차지하는 스타트에서 국내 선수들이 세계 수준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단은 다른 종목에서는 금메달을 많이 땄지만 500m에서는 몇 년 동안 메달은 커녕 결승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백진호 이순호 박사팀은 몇차례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말 새로운 스타트 기술 을 개발해 이번에 비장의 무기로 선보였다.
새로운 스타트 방법을 사용한 뒤 김 선수는 500m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처음 14m(출발 지점에서 처음으로 곡선 주로에 들어서는 거리) 구간에서 0.1초를 앞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지만 거리로는 40㎝나 차이가 나 다른 선수들을 충분히 제칠 수 있는 시간이다. 김 선수는 이번 500m 결승에서 스타트부터 선두로 나서며 끝까지 1위를 고수했다.
대학에서 역학을 전공해 스포츠 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백 박사는 모눈종이처럼 컴퓨터에 3차원의 가상 공간을 만든 뒤 김 선수의 움직임을 옮겨와 분석하는 등 새로운 자세를 다듬었다. 새 스타트 기술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당시 경기장의 빙판이 맞지 않아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마침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로 열매를 맺었다.
백 박사는 ˝김 선수가 워낙 근력이 좋아 스타트 기술을 잘 소화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공을 돌렸다. 그러나 전명규 쇼트트랙 국가대표 감독은 ˝취약했던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스타트 기술의 도움이 컸다˝며 과학자들에게 고마워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과학적인 체력 훈련도 큰 몫을 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해 상반기 연구원에서 체력 평가를 받았다. 이 평가에서 이승재 선수(남)와 박혜원 선수(여)는 좌우 근력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동성 선수도 다리의 굽히는 힘과 펴는 힘의 균형이 나빴다.
백 박사는 ˝이들의 자세를 분석해보면 뒤뚱거리면서 스케이트를 탄다˝며 ˝선수들이 말만 하면 잘 몰라도 과학적인 기록을 보여주면 다 알아듣고 스스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부족한 부분을 고친다˝고 말했다. 꾸준한 강화훈련 결과 이승재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박혜원 선수는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각각 계주 금메달을 따냈다.
백 박사는 ˝앞으로는 과학적인 훈련이 승부를 좌우한다˝며 ˝다른 나라가 곧 우리의 신기술을 따라하겠지만 우리도 계속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쇼트트랙 최강국의 명성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상연기자>dre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