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BK의 선택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18분


미국 프로야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구단주가 김병현과 봅 브렌리 감독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지목할까.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의 내로라하는 거포도 연방 헛 방망이를 돌리게 만드는 ‘핵탄두 잠수함’이지만 매트 맨타이의 부상 장기화에 따른 대체 마무리 투수다. 브렌리는 현장 경험이 없는 해설가 출신의 초보 감독이지만 지난해 사령탑 데뷔와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영웅이다.

엉뚱한 질문 같지만 최근 김병현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김병현은 지난해 월드시리즈의 악몽에서 벗어나 올시즌 단 1점도 내주지 않으며 평균자책 ‘0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5경기에서 5이닝을 던져 탈삼진만 11개. 그의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던 가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김병현은 15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2세이브째를 올린 후 1주일간 6경기째 아예 마운드 구경을 못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2번이나 아슬아슬한 세이브 상황이 있었지만 브렌리는 김병현을 제쳐두고 마이크 마이어스란 왼손 투수를 기용했다. 김병현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언더핸드스로 투수에게 강한 왼손 타자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마이어스를 냈다는 게 브렌리가 김병현의 통역인 주승철씨를 통해 전달한 메시지다.

브렌리가 언제부터 한국프로야구 LG의 김성근감독처럼 데이터 야구의 신봉자가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그는 앞으로도 김병현을 오른손 타자용, 마이어스를 왼손 타자용으로 쓰는 더블 마무리 시스템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올초 콜로라도에서 이적한 마이어스는 1점대 평균자책에 시즌초 2홀드에 최근 2세이브까지 더해 오히려 김병현보다 나은 성적을 올리며 브렌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바로 이게 현실이다. 이제 김병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외통수’다. 선수가 감독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법이다.

물론 기분은 상할 대로 상했고 하룻밤 정도 과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김병현은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불만은 가슴속에 묻어둔 채 데뷔 첫 해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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