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선 축구가 19세기까지 하루도 그칠 날 없었던 도시간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선수들은 도시의 명운을 걸머진 채 그라운드에 나서는 전사(戰士)이고 발을 구르며 응원하는서포터들은 후방을 책임지는 보급부대다.
‘카테나치오(빗장 수비)’로 무장한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움츠러드는 스페인이 그 대표주자다.
이탈리아의 수비축구는 기록으로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때는 이스라엘 스웨덴 우루과이와의 1차 리그 3경기에서 단 1점을 뽑고도 무실점으로 1승2무를 기록, 결승 토너먼트에 올라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82년 스페인월드컵때는 1차리그에서 폴란드 페루 카메룬과 모두 비긴후 다득점으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연파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프로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여서 ‘카테나치오’ 초창기인 1960∼70년대엔 리그 우승팀 득점이 총 30경기에서 40점대, 실점이 20점 가량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경기당 평균 득점이 2점대에 불과한 ‘재미 없는’ 경기의 연속이다. 하지만 관중석엔 열혈 축구팬으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이탈리아는 불과 100여년전인 19세기 후반 통일국가를 이루기전까지 도시 국가간 전쟁이 끊임없었다. 이탈리아인들이 내용에 관계없이 지역의 명예가 걸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상대의 파상공세를 조롱하듯 지켜내다 카운터 펀치 한방에 승리를 따내는 작전도 전쟁 미학의 연장선이다.
이탈리아의 뿌리깊은 지역감정이 독특한 전술로 발전했다면 세계 최고봉의 프로리그를 갖추고도 1950년 브라질월드컵때 4위를 차지한게 월드컵 통산 최고 성적에 불과한 스페인은 반대의 경우다.
스페인축구 양대 산맥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간의 지독한 악감정이 대표팀 선수는 물론 축구팬 사이에 뿌리깊어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8세기초 이슬람 지배하에 편입됐던 스페인은 15세기말 가톨릭 세력에 탈환됐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한 카탈루냐 지역은 그라나다 왕국 지배하에 마지막까지 이슬람 문화를 유지하며 스페인에 대립했다.1930년대엔 스페인 내전으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 블랑코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중앙 집권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카탈루냐어를 금지하는 한편 보호무역 정책으로 상업도시 바르셀로나의 목을 죄었다. 40년에 걸친 블랑코 독재정권이 끝났을 때 두 도시간 반감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었다.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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