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렇게…]성숙한 사회 도약 기회로

  • 입력 2002년 4월 26일 18시 12분


“제가 이래 뵈도 운전 경력 10년에 무사고입니다. 이번 기회에 아줌마 운전자들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저는 택시 운전합니다.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선출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자원봉사자라고 신분을 밝히는 분께는 무조건 택시비 반만 받겠습니다.” “저는 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88년 올림픽 때도 자원봉사자로 일했어요. 생각해보면 자원봉사 만큼 즐거운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용달차 몰고 있습니다. 좌우당간 금번에 열리는, 그 뭣이냐, 2002년 올림픽(?)을 다 함께 합심해서 멋들어지게 치릅시다.”

힙합 패션의 대학생에서, 돋보기 너머로 지긋한 눈길을 보내는 노신사까지, 연배도, 직업도, 관심사도 어느 것 하나 같을 법하지 않은 150여명의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이곳은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 그 동안 인터넷 교육을 통해서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2002 월드컵 수송부 자원봉사자들이 처음으로 한 곳에 모였다. 수송부 자원봉사자들은, 대회기간 동안 차량 운전 및 배차, 정비 활동 등을 하게 될 인력들과 공항, 국제미디어센터(IMC), 심판진과 FIFA 임원진, 그리고 귀빈들의 숙소가 될 호텔 등지에서 외국어 안내를 맡을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교육이 끝난 후 자원봉사자 모두가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들이라 겸연쩍어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기다리기나 한 듯, 한 명씩 일어나 일가견들을 피력한다. 서로 서로 잘 부탁한다고, 함께 협심해 최고의 월드컵을 치러보자고 다짐하고 격려하는 사이, 처음의 서먹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래된 친구들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자신의 차례를 맞은 어르신 한 분은 가슴이 벅찬 듯 목소리가 떨린다.“아마도 이 가운데 최고령일 것 같습니다. 왜정때 태어나서 6.25동란 때 청년기를 보내고,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을 보며 내 나라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이번 월드컵이 내가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될 역사적 사건이라 생각하고 자원봉사를 신청하게 됐습니다. 남은 소원이 있다면 월드컵을 훌륭하게 치러서 우리 민족이 다시 한번 도약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장내는 사뭇 진지해진다. 월드컵 성공에 대한 국민적 염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2002 월드컵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이익을 계산하느라고 사회 각 분야가 분주하다. 국가 이미지 향상과 경제적 파급 효과는 언제나 수위를 차지하는 항목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가 너무 밖으로 보여주는 데만 치중하고 있지 않나 싶어 아쉽다. 월드컵은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우리 삶의 내적 성숙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자원봉사단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세대도, 계층도, 직업도 다른 이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서로 돕고 이해하고 닮아가는 것, 그 가운데 ‘차이’를 이해하고 ‘남’을 포용하는 화합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정치인들도 어려워 못한다는 ‘국민 통합’ 역시 저절로 이루지게 될 것이다. 월드컵, 우리에게는 성숙한 사회로 도약할 수 있는 값진 기회이다.

박희원 본보 월드컵자문위원·2002월드컵 외국어 자원봉사자

aprilgirl@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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