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력지 ‘이브닝 스탠더드’는 지난해 9월17일자 신문에서 ‘영국이 한국으로부터 본받아야할 10가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일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한국인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86년 멕시코월드컵때와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국비 유학생이자 열혈 축구팬으로 경기장 이곳 저곳을 누빌때만 해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국의 민주화 시위와 남북대치에 관한 근심어린 걱정이었다. 물론 일부 멕시코인들은 한국이 세계청소년축구 4강에 올랐던 신화를 떠올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나 대다수에게 한국은 머나먼 아시아의 불안한 나라였다.
이후 94미국월드컵 때는 주미 한국대사관 공보관으로 근무하면서 월드컵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당시 한국은 2002월드컵 유치 출사표를 던졌던 시점으로 일본과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했다. 외국인에게 심어진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이때처럼 절실하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특히 친절한 국민성과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운 일본의 탄탄한 국가 이미지는 힘겨운 상대였다.
마침내 2002월드컵이 한일 공동개최로 판가름났고 이번에는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 홍보국장으로 월드컵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과거 직접 경험했던 두차례 월드컵과 달리 이번에는 외국언론의 ‘한국 알기’ 경쟁이 시작됐다. 아울러 한국이 세계의 눈앞에 발가벗겨지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잘못 알려졌던 한국의 ‘진실’이 있는 그대로 세계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취재했던 프랑스 ‘르 몽드’ 기자는 “일본은 당연히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국엔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이번에 와서 보고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이후 본선 조추첨행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방문했던 해외 언론은 “한국이 은둔의 나라였는줄 알았는데 개방적이며 역동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개고기 식용 문화’에 관해서도 이제는 호의적인 보도가 늘고 있을 정도다.
월드컵의 위력은 바로 이 점이다.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우리의 진면목을 짧은 기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저평가됐던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수직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30일 후면 88서울올림픽때의 두배에 이르는 전세계 1만여명의 기자와 함께 수십만의 축구팬이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한국의 구석 구석을 누비고 다닐 것이며 월드컵이 끝난 후에는 저마다 모국에서 ‘한국 유람기’를 한보따리씩 풀어놓을 것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후 1년여가 지나서야 일본이 ‘올림픽 파급 효과’를 본격적으로 맛본 것도 바로 이 ‘입소문’이 퍼지는데 걸린 기간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월드컵 홍보대사는 바로 친절한 미소로 외국인을 맞을 우리 시민들이다.
안병택 한국월드컵조직위 홍보국장 btlin@2002worldcu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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