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서포터스의 주먹

  • 입력 2002년 5월 8일 11시 32분


지난 5월 1일. 부천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아디다스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부천과 성남의 그날 경기는 승부여하에 따라 4강 진출 팀이 가려지는 매우 비중있는 경기였다. 당시 A조 1위는 수원으로 승점 11점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리고, 성남이 10점으로 2위였으며 부천이 9점으로 3위를 달리고 있었다. 즉,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4강 진출팀인 1-2위가 가려지는 판국이 되었다.

수원은 이미 최소 2위 자리는 확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위와 3위가 맞붙은 부천과 성남의 경기는 매우 치열한 상황이었다. 비록 성남이 1점을 앞서고 있긴 했지만 부천이 최소한 연장 골든골로만 이기더라도 순위가 뒤집어 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자력으로 최소 2위 자리는 확보할 수 있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같은 시간에 벌어진 수원:포항 경기에서 수원이 1대2로 패한 것으로 볼 때 조 1위도 가능했다.)

이날 경기에 나서는 양 팀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연장 골든골로만 지지 않으면 4강 티켓은 우리의 것”이라는 입장의 성남은 어웨이 경기의 불리함까지 감안한다면 다분히 방어적인 경기를 운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부천은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쥐어 짜서라도 기어코 승리를 따내야 하는 상황! 가뜩이나 부천은 작년에 비해 약화된 팀 전력을 가지고도 끝까지 4강행을 노려볼 만큼 선수단의 의욕과 투혼이 남다른 상황이었는데…

결국… 경기는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르지 못한 채 승부차기로 넘어갔으며, 부천의 4강 행은 승부차기 결과와 상관 없이 좌절되고 말았다. 비록 승부차기에서 부천이 승리를 했지만, 아쉬움만이 진하게 남는 씁쓸한 승리였을 것이다. 그날의 경기는 2002 아디다스컵 최고의 경기로 손꼽힐만큼 명승부였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부천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점에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제는 경기 후에 발생했다. 부천 서포터스, 가수 안상수씨, 그리고 성남의 선수 샤샤 사이에서 우째우째 하면서 주먹이 오갔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진단서를 끊고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도 있고 당사자 중 한 쪽은 억울함을 이야기 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누가 먼저 쳤는지, 또는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등의 미묘한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것은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이고, 서로간에 원만하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법의 힘이라도 빌리겠지…

이 사건을 두고 분명히 어디서 누군가는‘경기장 폭력’과‘훌리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또한 한국 축구의 팬 수준에 대해 심각한 우려 내지는 비웃음을 보냈을 것이다. 왜 주먹질 하고 지랄이냐고… 두 놈 다 똑같다고… 이제 경기장 폭력 사태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고… 월드컵을 앞두고 정말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고… 이래서야 되겠냐고… (물론,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거나, 알더라도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지만 말이다.)

자! 한 번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보자.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연장 골든골로만 지지 않으면 되는’ 성남과 ‘최소한 연장 골든골로는 이겨야 하는’ 부천의 입장과 자세는 처음부터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성남은 올 시즌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강팀이며 부천은 최하위 전력의 팀으로 구분되는 상황이었다. 전력상으로는 성남의 승리가 예상되었고 (최소한 연장전까지 내주지는 않으리라는 일반적인 예상이 있었다), 부천은 홈 경기의 잇점과 팀의 상승무드가 강력한 무기였다.

경기는 부천의 입장이나 투혼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남의 리드로 흘러갔다. 경기 후반 중반까지 2대0으로 리드를 잡던 성남은 이후 부천의 맹 추격에 1골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종료 상황으로 치달을 때까지는 성남의 2대1 리드! 여기서 부천은 종료 3분전에 극적으로 동점을 이루면서 연장전에서 4강행을 위한 마지막 승부 기회를 얻게 된다. (경기장 분위기는 상상이 가시겠지?)

그렇다면 연장전의 경기 내용은? 쉽게 상상이 가시겠지만, 성남의 입장에서는‘버티기’를 택해야 했고 부천은 모험을 감행하더라도 가부간의 결정을 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막판에 극적으로 동점을 이루었으니 팀의 사기는 물론이고 홈 관중들의 응원도 힘을 더욱 얻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가시는가? 성남의 시계는 느리게 가고 부천의 시계는 턱없이 빨리 돌아갔을 것이다. 당신이 응원하는 팀이 마지막 몇 분을 남겨 두고 혼신의 공격을 다하는데, 상대팀은 여유만만 하기만 하다면?

문제는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부천 팬들이 흥분하면서 욕지거리를 날린 근본적인 이유, 거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날 경기가 가지는 비중 자체가 남달랐으며 경기 진행 상황 또한 부천 팬들에게는 흥분의 빌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살짝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부천 팬들에게 있어서 그날의 경기는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마지막 남은 티켓 한 장을 놓고 벌어지는 연장전 승부였을지도 모르는데…

가장 먼저 짚어 보아야 할 부분은 심판의 경기 운영 문제다. 성남 입장에서는 정면 대결을 펼치기 보다는 최대한 경기를 지연시키면서 연장전을 버티려 했을 것이다. 최대한 지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심판이 그날의 경기 운영 과정에서 이러한 성남의 의지를 얼마나 저지하려 했는지, 또한 어떻게 저지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부천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이 책임져야 할 경기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며, 이 부분만큼은 성남과 부천의 싸움이 아닌 성남과 심판 사이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심판이 원활한 경기 운영을 위해 애를 쓰더라도 부천 팬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채워 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심판의 경기 운영에 대한 책임은 이처럼 경기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경기처럼, 경기의 성격과 비중에 따라서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심판은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경기가 종료됨과 동시에 심판의 역할이 끝나기는 하지만, 그 여파는 경기 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 잘못을 들추어 내기 이전에, 이 부분은 프로축구 연맹과 심판 위원회가 반드시 함께 되짚어 보아야 할 사항이다.

다음으로 경기 후의 안전 관리 문제를 살펴 보자. 아니, 이 부분도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일상적인 안전 관리보다 훨씬 세심한 대비가 필요했던 경기였음에도 경기 후의 안전 관리는 허술했다. 설사 준비가 소홀했다 하더라도, 경기를 마친 후에 그러한 충돌이나 홈 팬들의 흥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홈 팀에게는 원정 팀을 보호할 의무 또한 있을 텐데, 성남 선수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경기장을 나서야 했다. 그것도 그처럼 치열하고 흥분의 빌미가 다분한 경기를 마친 후에 말이다! 과연 주먹을 서로 주고 받은 피해자-가해자 당사자들 만의 책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홈 팀과 어웨이 팀이 같은 출구를 사용하는 문제, 그리고 그 때문에 경기가 끝난 후에는 양팀 서포터스가 한 곳으로 몰려들어 제2의 대결을 펼치는 현실. 또한 위험 천만하게도 선수들은 전문 안전요원이 아닌 서포터스의 가딩(Guarding)을 받으며 버스에 오르기도 한다. 그날의 경기에서도 성남 선수들은 부천 서포터스를 코 앞에 둔 채 버스에 올라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부천 서포터와 샤샤 선수 사이에 욕설과 몸싸움이 오갔던 것이다.

축구는‘폭력’이라는 불씨를 안에 담고 있다. 불덩이 같이 뜨거운 경기를 치르며, 관중들은 그 화끈한 열기와 치열한 공방전에 몰입한다. 경기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리고 팀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 강하면 강할수록, 축구 경기는 사람들의 가슴 한 구석에 짖눌려 있던 폭력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경기 내용과 결과에 따라 그러한 폭력성은 경기중이건 경기가 끝난 후건 간에 밖으로 뛰쳐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관중이 없던 시절과 비교할 때, 지금의 프로 축구는 서포터스라는 강력한 지지 집단을 확보하고 있다. 아직 풀뿌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예전에 비해서 홈과 어웨이, 그리고 적군과 아군의 구별 또한 점점 명확해 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로 축구에 생명력을 넣어 주고, 경기가 계속되어야 하는 진정한 이유,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궁극적인 구실을 제공해 준다. 팽팽한 긴장과 극도의 집중, 집단적인 합심을 통해 맛볼 수 있는 축구 경기의 참 맛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주먹을 휘두른 사람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극도의 흥분과 광적인 몰입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 필자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최근 잇달아 열리는 국가대표팀의 평가전을 직접 관전해 본 사람들이라면, 사뭇 삼엄하기까지 한 보안 검색과 경기장 안전 관리를 경험했을 것이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경기에 지장을 줄만한 모든 것에 대한 반입이 통제된다. 서포터스는 깃대를 들고 들어갈 수 없으며, 기타 각종 응원용 북과 통천(대형 플랙)은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경기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꽃가루와 휴지폭탄(두루마리 휴지)도 반입할 수 없다. 경기장 내에서는 수 많은 보안요원들이 관중석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으며, 통로에 서서 관전하는 것조차 제약을 받는다.

우리의 프로축구… 무방비 상태다. 그렇게까지 강화된 안전 관리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디다스컵 4강 진출 티켓을 놓고 벌이는 경기에 대한 대비는 너무도 미흡했다. 경기 후의 안전관리 또한 허술했다. 경기 운영 측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데도, 모든 사람들은 ‘서포터스가 휘두른 주먹’에 더 집중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훌리건이 등장한 것일까? 어쩌면 훌리건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축구팬을 가장한 훌리건들이 머리를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먼저 반성을 해 보자. 우리의 무사안일로 인해 경기장의 흥분이 폭발하도록 방치하지는 않았는가? 이미 몇 차례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사과와 용서, 합의, 무마와 같은 미봉책만으로 문제를 단순화 시키지는 않았는가?

서포터스는 분명히 우리의 풀뿌리 같은 프로 축구 현실에서 소중한 존재이다. 선수들조차 그들만큼 팀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할 만큼, 그들의 애정과 투혼은 유별나다. 그들이 주먹을 휘두른 것에는 ‘심심한 유감’을 표현하는 수준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주먹을 방치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인색하기만 한 지금의 사태인식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서포터스의 주먹! 그것은 경기장의 평화를 뒤흔드는 폭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 근본적인 마음은 홈 팀을 위한 강력한 힘을 목적으로 한다. 서포터스의 책임만으로 몰아세우거나 성급하게 ‘훌리건’이라는 딱지를 씌우는 것은 지나친 무관심인 동시에 무사안일한 자세임을 인식했으면 한다. 그들의 주먹은 우리 프로축구를 살찌우는 큰 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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