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야, 유럽. 이 소리를 들어라. 터키가 나가는 발소리를. 터키의 진격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 지난 3월 19일 이스탄불의 아리·사미·엔·경기장. 터키 최강을 자랑하는 팀 갈라타사라이가 유럽 챔피언스리그 2차 최종전에서 바르셀로나(스페인)과 맞섰다.
대합창은 16, 17 세기, 페르시아만에서 유럽, 아프리카까지 영토를 넓힌 오스만·터키를 이미지 한 노래다. 터키 대표나 클럽이 유럽세력과 싸울 때 불려진다.
" 93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를 이겼을 때로부터 응원하고 있다. 터키인의 자존심을 살려줬다. " (27세, 엔지니어)
" 유럽과 싸울 때는 갈라타사라이가 터키를 대표한다. 국민의 염원을 이루어준다. "(29세, 회사원)
서포터들은 자신만만하다. 2년반동안 유럽대표팀 20번을 상대해 왔지만 진 적이 없다.
그러나 결과는 0-1. 2년 연속 준준결승 진출은 이루지 못했다.
영어로 터키를 의미하는 'turkey'는 '안 좋은 녀석'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유럽에 있어 동부 대국 터키는 이질적 존재다. 그리고 터키가 본 유럽은 '차별자'이며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시합전의 분위기는 경기장을 메운 갈라타사라이의 서포터들이 박수와 함께 "당신들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라는 콜이 나오면서 달아올랐다.
"지난주 로마전에서 상대가 건 시비에 선수들끼리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보고 "유럽이 또 우리들을 업신 여겼다."라며 격한 감정이 치솟았다. 유럽에 대항하는 갈라타사라이는 희망의 상징으로서 다시 한번 지지를 받았던 것"이라고 현지 기자는 전했다.
▼ 5000명 아이들을 교육 ▼
고대도시 이스탄불도 유적이 있는 중심가에서 교외로 빠지면 현대적인 가옥이 줄지어 있다. 갈라타사라이의 연습장은 그런 고급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부지내의 연석이란 연석은 팀칼라(빨강과 노랑)의 줄무늬 모양. 이러한 색조가 풍경을 밝게 하고 있다.
구단 창립은 1905년. 터키 최초의 축구팀이다. 핵심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갈라타사라이고 5학년생이었던 아리·사미·엔씨였다. 그의 이름은 아직도 경기장에 남아있다.
"전국에서 5000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거기에서 선발한 7~18세의 300명을 연습시키고 있다"고 유스팀의 에르카사프·코치(44)는 말한다.
길라타사라이 활약의 원동력은 84년에 취임한 독일인 데르발 감독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선수였던 에르카사프 코치는 " 그가 돌아와 희망이 생겼다"고 회고한다.
데르발 감독은 우선 외국과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독일에서 캠프를 하며 명문팀과 연습 시합을 했다. 은퇴한 선수에겐 지도자 교육을 실시했다. 재작년 갈라타사라이를 유럽 연맹(UEFA)컵 우승으로 이끈 테림감독도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아이들 육성을 위한 시스템도 데르발 감독이 만들었다. 터키 대표중 약 절반이 이곳 출신이다.
"터키인은 주말에 리그 화제만으로도 보낼 수 있는 축구광이다. 이들의 성공은 경제위기를 희석시킬만큼 터키인들에게 의미가 있다." 에르카사프 코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국가에서도 갈라타사라이의 발전을 후원했다.
83년 당시 오자르수상이 외자를 도입하는 한편 경제 개방정책을 펼쳐 외국인의 입국이 용이해졌다.
'축구를 사람들의 양식으로' 오자르수상은 축구 강화를 국가정책의 하나로 내걸며 국가소유였던 각지의 경기장을 팀에 이양하였다. 그리고 나라가 투자해 잔디를 깔았다.
<아사히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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