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기자의 논스톱슛]성숙한 관전예절 필요

1969년 10월20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70년 멕시코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 한국-호주의 경기가 벌어졌을 때다.

한국으로서는 이 한판을 이겨야만 2승1무1패로 호주와 동률을 이뤄 최종전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총력전을 전개했고 후반 20분까지 1-1의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의 최전방 공격수였던 이회택이 상대 반칙으로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는 임국찬. 3만여 관중이 숨을 죽인 가운데 볼을 페널티킥 지점에 올려놓은 임국찬은 뒤로 10여걸음 물러난 뒤 슈팅을 날렸다. 이 순간 왼쪽으로 뛰어들 자세를 취하던 호주 GK 커리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볼을 가슴에 안고 말았다. 한국축구 16년만의 월드컵 진출 꿈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경기 후 모든 비난은 키커인 임국찬에게 쏟아졌고 견디다 못한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말았다. 지금 61세가 된 임국찬씨는 최근에야 모국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겨우 비난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한국의 2002월드컵 조별리그 상대인 미국팀에 대해 전문가로서 여러 가지 충고를 아끼지 않는 등 ‘웃음’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이런 비난을 받은게 어디 그 뿐인가. 86년 멕시코월드컵때 한국대표팀의 수문장이었던 오연교는 월드컵 이후 “골키퍼 때문에 망했다”는 엄청난 질책속에 괴로워했고 결국 지병으로 2000년 40세에 단명하고 말았다. 물론 그의 지병이 이런 비난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평소 고인은 “쏟아지는 가시돋힌 비난이 정말 가슴 아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 한국 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을 공개로 할 때에는 취재진은 물론 현지 축구팬이 자유롭게 훈련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훈련 현장에서 선수들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일부 몰상식한 축구 팬 중에는 반말조의 욕설이나 비난성의 야유를 퍼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수만명의 관중 앞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로서는 이런 주위의 ‘소음’을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에 앞서 선수들을 심하게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최소한의 관전 예절은 갖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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