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는 일반 작물과 달리 독특한 특성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녹색 식물은 잎이 무성할수록 잘 자라는데 잔디는 경기를 위해 성장에 필수적인 잎 조직이 지속적으로 깍여 나가는데도 끊임없이 재생장을 한다. 또 격렬한 경기로 곳곳이 심하게 훼손될지라도 적절한 관리만 뒷받침되면 어느새 맨땅을 다시 덮어버릴 수 있다. 또 선수들이 밟거나 뛸 때 생기는 엄청난 압력을 온 몸으로 견뎌낸다. 즉 잔디는 기본적으로 회복력, 지피성, 내답압성 등 3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추고 있는 식물이다.
잔디가 유래된 배경을 이해하면 그라운드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다. 잔디는 일찌기 낙농업이 발달한 유럽의 축산 농가에서 넓은 지역에 소나 양같은 가축을 풀어놓고 기르는 방목과 관련이 깊다. 당시 알파파, 훼스큐 등의 작물을 재배하여 가축의 먹이로 사용했는데, 이 때 심었던 여러 가지 작물 중에서 가축이 뜯어 먹거나 이동하면서 밟더라도 잘 자라 지표면을 완전히 덮을 수 있는 작물이 잔디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목초지에서 가축이 풀을 뜯어 먹는 방목 과정은 오늘날 잔디밭 관리에 필수적인 잔디 깎기작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또 선수들이 축구을 하면서 전후반 90분 동안 그라운드 위를 뛸 때 잔디에 가해지는 압력(답압)은 목초지에서 가축이 이동할 때와 유사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잔디는 30∼40 종류지만 국내에서는 대여섯종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잔디는 잘 자라는 온도 조건에 따라 크게 난지형과 한지형으로 구분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두가지 잔디 모두 재배가 가능하다.
월드컵 잔디는 밟히고 패여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열대, 아열대, 온대지역이 원산지인 난지형 잔디는 섭씨 27∼35도의 조건에서 가장 왕성하게 자라는 잔디다. 계절적으로 국내에서는 여름에 왕성하게 자란다. 기온이 다소 서늘한 봄과 가을에는 자라는 속도가 늦다. 겨울에는 추워서 자라지 못하고 누런 상태로 월동을 하기 때문에 12월부터 3월 사이 주위에서 누렇게 보이는 잔디가 바로 난지형 잔디다. 이번 2002월드컵에서는 들잔디로 조성된 대전월드컵 구장과 버뮤다그라스로 조성된 일본의 일부 경기장에서 난지형 잔디를 만날 수 있다.
반면 한지형 잔디는 생육에 알맞은 온도는 15∼24도로 온대, 아한대, 한대 기후대 지역에서 잘 자란다. 서늘한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봄과 가을에 왕성하게 자란다. 대신 무더운 여름에는 잘 자라지 못하지만 최근 관리 기술이 향상돼 큰 문제가 없어졌다.
이 잔디는 겨울에도 어느 정도 녹색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2002월드컵 경기장에 이용되고 있는 켄터키 블루그라스, 페레니알 라이 그라스, 톨 훼스큐 등이 바로 한지형 잔디다.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경기장이 대부분 한지형으로 조성된 이유는 축구 국제행사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연중 녹색 기간이 난지형보다 3∼4개월 길어 경기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 또 잔디 조직이 부드러워 부상 위험이 적고 충격 흡수력도 좋다. 잔디를 깎은 후 나타나는 그라운드 무늬 상태도 아주 우수해 TV 중계시 홍보 효과가 대단히 큰 장점까지 있다.
김경남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전문위원(삼성에버랜드 기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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