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영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국제무대에서 스웨덴보다 한 수위로 평가받는 잉글랜드가 이상하게도 스웨덴에만은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1969년 이후 스웨덴과 맞붙어 9연속 무승(3패6무)을 기록한 것.
결국 스웨덴이 동점골을 넣어 1 대 1로 경기가 끝나자 영국인들은 “지난해의 악몽이 되살아났다”고 탄식했다. 지난번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 선수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결국 동점골을 허용했었다. 영국인들은 자국 팀이 스웨덴을 첫 제물로 삼아 ‘죽음의 조’라 불리는 F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를 고대해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 기념식을 맞아 과거의 영화(榮華)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경기의 ‘안타까운 무승부’는 영국인들에게 더욱 실망감을 안겨줬다. 일각에서는 철저한 출국금지 조치로 영국 내에 발이 묶인 훌리건(난동 축구팬)들이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왔다.
○…‘죽음의 F조’에서 나이지리아를 꺾고 첫 승을 기록한 아르헨티나 국민은 “실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면서도 대부분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민 전체가 축구광일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날 경기가 꼭두새벽에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밤을 새우며 경기를 관전했다.
우세한 경기 속에서도 골이 터지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후반 18분경 ‘득점기계’ 바티스투타(33)의 첫 골이 터지자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정종열(鄭鍾烈)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한국 영사는 “방금 전 첫 골이 터졌는데 자던 사람도 깰 정도로 환호성이 컸다”며 “축구에 열광적인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24시간 문을 여는 술집 등에서 주로 경기를 시청한다”고 말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은 3명 중 2명꼴로 자국 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예상치 못했던 대표팀의 선전에 매우 흥분된 분위기였다.
남아공 ETV 등 주요 방송들은 주요 경기 장면을 잇달아 재방송하는 한편 요하네스버그 시내 중심가에 설치된 대형전광판도 경기 장면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남아공에서는 같은 조에 소속돼 있는 파라과이, 슬로베니아, 스페인 모두 강팀인 데다 최근 주요 선수들의 해외 수출로 팀 조직력이 떨어지는 편이어서 월드컵 본선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한국대사관 김승호 홍보관은 “축구 전문가들도 강팀을 만나 선전하는 것조차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분위기였는데 이날 경기 결과로 국민이 매우 들떠 있다”고 전했다. 남아공은 전 인구의 80%가량이 ‘축구광’으로 분류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다.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는 시민들이 오전 6시30분 중계된 경기를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TV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혹시나 세네갈팀이 프랑스를 격파한 ‘이변’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으나, 1 대 0 한 골차로 패한 것도 대견하다는 분위기였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잇단 골을 막아낸 나이지리아팀 골키퍼 아이크 쇼룬무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에서도 월드컵 축구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한일 월드컵 개막일인 지난달 31일부터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월드컵 관련 기사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인기종목인 미식축구만을 주로 다뤄오던 미국 언론이 비인기 종목인 축구를 이처럼 크게 다루고 있는 것은 최근 미국 사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히스패닉계와 아시아인들의 축구 열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포스트는 1일 이례적으로 1면 머리기사와 스포츠섹션 1면 등 4개면에 걸쳐 서울에서 개막된 월드컵 소식을 상세히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일 월드컵축구 E조 1차전에서 0-8로 독일에 대패하자 분노와 경악에 휩싸였다고 사우디 언론이 2일 보도했다.
사우디에서는 경기 전까지만 해도 사기가 충천한 사우디의 ‘그린 이글스’들이 독일을 물리치고 세네갈과 같은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이 높았으나 결과가 참패로 끝나자 선수와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스포츠평론가 마크빌 알 사야리는 “선수들이 애초부터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경기에 나선 것 같았다”며 “조직력도, 공격도, 수비도, 싸우려는 의지도 없었던 졸전이었다”고 혹평했다.
한 시민은 “녹색 유니폼을 입은 건 사우디 선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며 “마치 유령들이 뛰는 것 같았다”고 극도의 실망감을 나타냈다.
스포츠 평론가들은 “조하르 감독이 아무런 전략이나 계획도 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며 그에게 사령탑을 맡긴 게 잘못이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사우디 대표단 단장인 나와프 빈 파이잘 압둘 아지즈 왕자는 조하르 감독을 해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 실권자인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왕세자는 선수단에 전화를 걸어 독일전에서 패배한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남은 예선전 두 경기에서 더욱 분발해줄 것을 기대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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