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표정]"6월 4일 신화를 만들었다"

  • 입력 2002년 6월 4일 18시 40분


“역시 황선홍” 첫골 환호. 사진=권주훈기자
“역시 황선홍” 첫골 환호. 사진=권주훈기자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아무도 움직일 줄 몰랐다. 그리고 승리의 폭죽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함성은 거리를 가득 메웠다.

4일 오후 10시43분 월드컵 한국-폴란드전이 끝났지만 서울 종로구 세종로 네거리와 대학로에 운집한 13만여명은 승리가 안겨준 벅찬 감동을 만끽하느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전광판 중계 사상 최대 인파가 모인 이날 시민들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으며 월드컵 첫 승의 감격과 16강 진출의 밝은 희망을 만끽했다.

▼세종로▼

10만여명의 인파가 인도는 물론 도로 일부까지 가득 메웠으며 시민들이 입은 붉은 색 티셔츠와 휘장으로 흡사 ‘붉은 바다’를 연상케 했다.오후 8시반 중계방송이 시작되면서 한국 대표팀의 박지성 안정환 홍명보 선수 등의 얼굴이 전광판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힘찬 박수와 함성으로 환호했다. 특히 거스 히딩크 감독이 등장하자 시민들은 “당신을 믿는다”며 큰소리로 외쳤다.

경기 시작 26분 만에 황선홍 선수가 멋진 첫 골을 터뜨리자 “와” 하는 함성이 천지를 흔들었으며 시민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또 ‘붉은 악마’ 응원단 회원을 비롯한 시민들은 모두 기립해 태극기와 플래카드를 흔들며 서로 얼싸안고 “황선홍, 황선홍” “대∼한민국”을 연발했다.

이어 후반 유상철 선수가 승리를 굳히는 두 번째 골을 터뜨리자 일부 여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회사원 이수연씨(26·노원구 상계동)는 “이토록 기쁜 날은 생애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일부 시민들은 자정이 지나도록 승리를 자축했으며 일부는 태극기를 손에 든 채 롤러블레이드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한편 세종로에서 무교동 방향과 서대문 방향 8차로 도로는 오후 6시경부터 시민들이 몰려 차량 통행이 금지됐다. 응원단의 행렬은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1㎞나 늘어섰다.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시민들은 동아일보와 교보빌딩 등 인근 빌딩에 들어가 응원전을 벌였으며 이 일대 편의점과 상점 등에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맥주가 동나기도 했다.

▼대학로▼

경기 시작 7시간여 전부터 차량 통행이 통제된 가운데 3만여명의 시민이 응원에 열을 올렸다.

거리 곳곳에는 ‘한국 축구의 힘, 온 국민 응원 페스티벌’ ‘가자 16강으로’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빨간 풍선이 내걸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대형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정혜선씨(32·여·경기 성남시)는 “정말 그림 같은 슛이었다”며 “한국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국민대생 한준희(韓俊熙·21)씨는 “좋은 자리에서 응원하고 싶어 경기 시작 7시간반 전에 대학로에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부터 SK텔레콤이 1만여장의 붉은 색 티셔츠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대학로 중앙에서 인근 동숭파출소까지 500여m나 늘어서기도 했다.

한편 이날 세종로 네거리와 대학로에 모인 시민들은 경기 후에 스스로 쓰레기를 줍고 한데 모으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였다.

고려대생 조현우씨(21)는 “함께 본 경기의 마무리도 중요한 것 같다”며 “선수만 잘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멋진 월드컵을 치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첫 승이란 쾌거를 거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이날 밤 전국을 뒤흔든 ‘진앙지(震央地)’였다. ‘부산발’ 승전보는 온 국민을 하나로 묶기에 충분했다.

오후 8시반 경기가 시작돼 26분 만에 ‘황새’ 황선홍 선수의 천금 같은 첫 골이 폴란드의 골네트를 뒤흔들자 관중석은 환희의 도가니로 돌변했다. 붉은 티셔츠 차림인 5만여 관중은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모두들 주먹을 불끈 쥐고 양팔을 휘두르며 “황선홍!”을 연호했다.

후반 8분. 유상철이 추가골을 터뜨리자 함성은 더욱 하늘을 찔렀다. 눈물까지 흘리는 관중도 있었다. 관중의 함성에 꽹과리와 북소리까지 가세해 경기장은 떠나갈 듯했다.

관중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끝없이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냈다.

폴란드 응원단 500여명도 본부석 맞은편 스탠드에서 자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온 힘을 다해 응원했으나 시종 한국팀에 밀리다 패하자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관중과 자원봉사자들은 말끔히 뒷정리를 하고 질서정연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승리이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환희는 밤새 이어졌다. ‘영웅’들이 떠난 뒤에도 경기장 주변에는 1만여명의 ‘붉은 악마’와 관중이 한데 어우러져 북소리에 맞춰 ‘오 코리아’를 소리 높여 외쳤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애국가도 합창했다. 4000여명은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감격의 순간을 두 번 세 번 되새겼다.

‘붉은 악마’와 시민 등 1만여명이 운집한 부산역 광장도 경기 종료 후 한동안 흥분의 열기가 가득했다.

해운대 백사장에도 붉은 색 티셔츠 차림의 5만여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파도타기 응원’ 등으로 힘을 보탰다.

행사를 주관한 문화단체는 골이 터질 때와 경기가 끝난 뒤 해운대 하늘 높이 수십 발의 축포를 쏘아 올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해외 미판매분 입장권 3000장에 대한 현장 판매가 실시된 부산 사직야구장에는 1만여명의 축구팬이 몰려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3일 오후 늦게 해외판매 대행사인 영국 바이롬사의 해외 미판매분을 현장에서 판매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몰려들기 시작한 축구팬들은 자정경 3000명을 넘어섰고 판매 개시 시각인 4일 오전 10시경에는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부산지방경찰청도 이날 전 경찰력을 동원해 질서유지와 교통안내에 나섰고 기마경찰과 헬기 등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입체작전을 수행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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