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김영주 심판을 위한 변명

  • 입력 2002년 6월 6일 23시 17분


한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진다. 심판의 휘슬은 울리지 않은 상태. 이 경우 공을 잡은 선수는, 특히 상대 팀은 터치라인 바깥으로 공을 내보낸다. 쓰러진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자신의 명예까지 지킨 셈이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공격을 해도 ‘법적 하자’는 없지만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파괴하는 자해에 불과하다.

단언컨대 축구는 또 하나의 ‘도덕 교과서’다. 당장 아이를 데리고 동네 운동장에 나가 보라. 그 순간 당신은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도덕 선생님이 된다. 물론 당신의 아이를 직업 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더라도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공에 집중하는 열정의 참맛을 당신은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은 조무래기 친구들 대여섯 명과 공을 차는 아이의 모습에서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그 조건 아래 정당한 경기를 펼쳐나가는 멋진 장면도 볼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공을 차면서 공정한 규칙, 그것을 엄수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 그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열정의 의미를 스스로 익혀나가는 것이다.

타칭 ‘명예감독’으로 있는 동네 축구클럽에서 아이들과 뛸 때도 나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공으로 장난치지 마라.” 축구공은 ‘신성한 것’이다. 그것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것은 그저 잔재주를 피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장난스럽게 볼 트래핑 연습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주문하는 것은 실제 경기 상황에서 상대방의 약을 올리는 고의적인 드리블, 슛을 차야 하는 상황에서 요리조리 재주피우면서 골키퍼를 희롱하는 행위, 화가 난다고 공을 함부로 차는 일, 특히 상대방을 향해 악의적으로 강하게 차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브라질-터키전 주심을 본 김영주 심판의 휘슬이 논란이 되고 있다. 흥분한 터키 축구팬들의 비난 때문에 수십 년 쌓은 양국 우정에 금이 갈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냉정해지자. 김영주 심판이 우리나라 국적의 심판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심판으로서 그의 휘슬을 생각해보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대회에 앞서 심판진에게 ‘공격자 보호 원칙에 입각하여 카드를 아끼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특히 페널티구역 안팎의 반칙에 대해 강한 제재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영주 심판은 그 주문을 지켰다. 스페인-슬로베니아전에서도 주심은 공을 걷어내는 발에 ‘걸려 넘어진’ 스페인에게 페널티킥을 선물했다. 이번 대회의 특징이다.

논란을 증폭시킨 것은 후반 막판의 퇴장. 김영주 심판은 명백히 실수를 했다. 무릎에 공을 맞은 브라질의 히바우두가 얼굴을 감싸쥐며 넘어졌는데 그 ‘할리우드 액션’을 놓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터키의 하칸 윈살 선수가 신경질적으로 볼을 찼다는 점이다. 그것은 잠시 경기가 중단된 상황에서 상대방에서 공을 넘겨주는 선수가 해야 할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윈살 선수는 공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세게 찼고 무방비 상태로 맞은 히바우두는 순간 아찔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영주 심판은 실수했다. 윈살에게 경고를 줄 정도였다면 히바우두는 당장 퇴장시켰어야 했다. 둘 다 축구장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렸으며 굳이 경중을 가린다면 히바우두야말로 퇴장감이다.

그런데 히바우두의 연기를 김영주 심판은 놓친 듯하다. 코너킥 상황이었기 때문에 문전의 자리다툼에 눈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백한 실수다. 하지만 윈살에게 경고를 준 것은 실수가 아니다. 축구공에 화풀이를 하는 선수는 경고를 받아야 한다. 윈살은 경고를 받았고 그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이 또한 엄연한 규칙이다. 심판이 양국의 우호관계까지 걱정하며 휘슬을 불어서는 안된다.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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