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일본의 TV나 신문에는 한글까지 섞어 한국의 새로운 얼굴을 소개하는 기획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을 소개하는 책과 한일 공동개최의 음악제나 연극 등의 이벤트도 꼬리를 물고 있다. 신문에는 한국 지도까지 나오는 경우도 많아 일본인들도 이제는 꽤 한국 지명을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국이 일본인들의 생활에 스며든 것은 저 불행한 시대 이후 처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일본인 생활에 한국 스며들어▼
이미 최근 10여년간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국’붐이 일고 있다. 김치도, 롯데월드도, 한국영화도, 그리고 한국어도 완전히 일본사회에 침투했다는 인상이다.
너무나 가까운 나라끼리 관계가 너무 깊어지면 오히려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대에서는 한반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문명을 일본에 전해주기 위해 건너와 그대로 지식계급과 기술집단으로서 일본에 정착했다. 그러나 결국 국가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된 일본은 오랫동안 열등감을 품어온 한반도를 제것으로 만들겠다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해는 1947년이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을 조인한 판문점이라는 지명과 38선, 이승만(李承晩)이라는 이름만이 겨우 기억에 남아 있다. 한반도의 식민통치시대를 모르는 대신, 나는 한국전쟁에 따른 ‘어부지리’로 경기회복을 이루고 고도성장의 파도를 탄 일본에서 자라게 된 것이다.
일본의 고도성장이라는 것은 약한 자, 돌보기 귀찮은 자를 떼어버리고 가는 과정이었고,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권력자들이 미국에 의존해서 그대로 지배력을 유지한 구조이기도 했다. 때문에 내가 어른들로부터 들은 전쟁 이야기에는 가해자로서의 측면은 생략되거나 잊혀져 있었다. 놀란 것은 어른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일본이 식민지배를 했었다는 사실조차 아이들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전후 세대는 ‘한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렴풋하게 ‘어둡고, 먼 나라’라는 이미지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일본에 사는 한반도 출신의 거의 대부분이 차별을 피하기 위해 출신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의 ‘광주사건’이 계기가 됐다. 일본사회도 한국의 ‘오늘’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또 일본에서 활약하는 유명 야구선수나 가수, 작가 등을 비롯해 남북한 국적의 사람들이 자신의 원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시대는 더욱 바뀌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대사관의 북한 망명 희망자에 대한 대응이 문제가 되고 있고, 옛 ‘일본군 위안부’나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월드컵 공동개최는 서로 기대하던 것 이상의 친근함을, 권력과는 관계없이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져다주고 있다고 본다. 이를 일시적인 친근함으로 끝내는 것은 너무 아깝다. 음악 연극 영화 TV프로 등을 좀더 협력해서 만들어 이를 세계에 내보내면 어떨까. 상대방의 문학작품을 더 많이 읽게 된다면,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라는 것도 상대방의 목소리를 통해 좀더 명확히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문화 함께 만들어 가야▼
조금 더, 조금 더 우리들은 서로를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가를 알고 싶어한다. 언젠가는 중국이나 베트남까지 합쳐 옛날의 ‘한자문화권’으로 공동의 문화활동을 전개할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고, 더 나아가 한일관계를 계기로 아시아의 문화를 함께 생각하는 장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시아의 우리들은 지금까지 각자가 고립감을 맛보아 왔다. 정치적인 밀고당기기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의지로 손에 손을 맞잡게 되는 것을, 지금 우리들은 가장 강력하게 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쓰시마 유코(津島佑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