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우스’ 안정환(26·이탈리아 페루자)은 순간적으로 자기가 골을 터뜨렸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후반 33분. 미드필드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을 이을용이 절묘하게 띄워주자 골지역 오른쪽에 있던 안정환은 상대 수비수 제프 어구스와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볼은 안정환의 머리를 살짝 맞고 골네트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골문을 뒤로 한 채 헤딩한 안정환은 어구스와 벌인 몸싸움의 여파로 그라운드에 나자빠지는 바람에 그의 작은 몸은 미국 수비수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스탠드에서 “와”하는 환호성이 터졌고 그때서야 골문 앞에서 일어난 안정환은 양팔을 높이 들며 코너 쪽으로 달려갔다. 한순간의 수비실책으로 1점을 내줘 패색이 짙던 한국에 다시 희망을 던져준 천금같은 골은 이렇게 터졌다.
안정환은 코너 부근에서 갑자기 멈춘 뒤 허리를 굽히고 팔을 앞뒤로 젖히며 스케이트를 타는 포즈로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러자 이천수 최용수 설기현 등 다른 선수들도 다 함께 그룹을 지어 ‘스케이트 타기’ 세리머니에 동참했다. 그 순간 경기장을 찾은 6만여 팬들은 모두 일어서서 “안정환”을 연호했고 이 함성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후반 10분 황선홍을 대신해 교체 투입된 안정환은 흡사 ‘먹이를 사냥하는 표범’같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미드필드와 최전방을 휘저으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가 하면 상대 공격수가 볼을 잡으면 재빨리 협력수비에 들어갔고 놓치겠다 싶으면 온몸을 날려 태클로 저지했다. 그의 얼굴에선 뭔가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장함이 엿보였다.
결국 안정환은 이을용의 프리킥을 정확하게 예측한 뒤 문전으로 쇄도해 어구스의 강력한 온몸 저지를 뚫고 귀중한 결승골을 터뜨려 ‘혹시 패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4700만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헤딩골. 벤치에서 초조하게 게임을 지켜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의 이 한방에 특유의 손을 높이 치켜드는 포즈를 여러 차례 보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정환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김동성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미국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국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스케이트를 타는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이겼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라며 “그러나 포르투갈전 땐 꼭 이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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