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실점… 와! 동점골…지옥과천당 오간 90분

  • 입력 2002년 6월 10일 22시 51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도둑맞은 김동성을 위한 골 세레모니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도둑맞은 김동성을 위한 골 세레모니
한국과 미국팀의 일전은 90분 내내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한 편의 드라마였다.

전반 6분 설기현이 황선홍의 절묘한 센터링을 받아 골대 위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논스톱 슛을 날리면서 응원 열기는 고조되기 시작했다.

전반 9분 김남일의 35m 중거리슛이 다시 미국팀 골키퍼의 선방으로 무위에 그치자 관중은 “아!”하는 탄식을 터뜨렸다. 그러나 계속 주도권을 잡고 맹공을 펼치는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초반 응원 열기는 선수들의 선전과 함께 고공 비행을 계속했다. 응원단은 전반 11분 미국팀 클라우디오 레이나의 절묘한 패스가 한국 수비진에 의해 번번이 차단되고 12분과 14분 유상철의 센터링, 박지성의 왼발슛이 계속 상대 골문을 위협하자 “대∼한민국” “고구마 짱”을 연발했다.

행운의 여신이 한국팀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전반 21분 황선홍이 미국 수비수 프랭키 헤지덕과 충돌해 오른쪽 눈 부위가 찢어지면서부터. 한국팀의 승리를 확신하던 응원단은 황선홍이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나간 사이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황선홍이 그라운드 밖에 누워 있던 약 2분 동안 다소 흐트러진 전열을 틈타 미국의 클린트 매시스가 한국 수비수 2명의 키를 넘기는 롱패스를 받아 한국팀 골 네트를 흔든 것.

전반 내내 열광적이었던 응원단과 국민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고 일부 여성 관중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불운은 전반 후반과 후반 중반까지도 계속됐다.

전반 38분 머리에 붕대를 감은 황선홍이 페널티킥을 얻어내자 관중은 “그러면 그렇지”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이을용의 어이없는 실축으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깊은 탄식과 함께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전반 37분과 후반 10분에 이천수, 안정환이 투입됐지만 한국팀은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응원단은 계속 애를 태워야 했다.

촉박한 시간과 계속된 슛 실패로 초조해 하던 관중은 후반 33분 ‘히딩크호’의 순항이 계속됨을 확인했다.

이을용이 센터링한 ‘피버노바’는 안정환의 절묘한 헤딩과 함께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

분위기는 급변했다. 전국의 거리에는 축포와 오색종이가 뿌려졌고 일부 관중은 감격에 겨워 윗옷을 벗고 길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대학생 오승훈씨(25)는 “진동만 계속하던 화산이 마침내 폭발한 느낌이었다”며 “다시 태어나도 이런 감동은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안정환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쇼트트랙 경기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골 세리머니를 연출했다. 관중은 세리머니를 보면서 “이제야 김동성 선수의 한을 풀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시 일어난 한국팀은 미국의 골문을 계속 위협해 국민의 가슴을 끝까지 졸이게 했다. 그러나 종료 직전 미국팀 골문 앞에서 이을용의 결정적인 패스를 최용수가 크로스바를 넘기면서 한국팀의 16강 진출 결정은 14일 포르투갈과의 일전이 끝날 때까지로 미뤄지게 됐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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