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의 격전에서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뽑은 안정환(페루자)은 숱한 어려움을 겪고 꿈의 월드컵무대에 선 ‘오뚝이’.
멋진 외모에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는 탁월한 축구실력. 두말할 필요가 없는 스타플레이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국내에서는 통했지만 유럽 ‘빅리그’로 발길을 돌리면 그는 영락없는 ‘우물안 개구리’밖에 안됐다.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위해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국내 그라운드를 휘젓던 안정환은 2000년 7월 이탈리아 세리에A의 페루자로 임대돼 ‘빅리그’에 진출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그라운드보다는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았다. 선수들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까지 알게 모르게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촌놈’을 홀대하는 것도 참아내야 했다.
계속 후보로 남아 있자 대표팀 내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해 1월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프로리그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며 그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 물론 거친 몸싸움을 싫어하고 수비 가담능력이 떨어지는 그의 플레이를 싫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지네딘 지단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플레이를 노트에 적어놓았다가 혼자서 피나게 연습했다. 빅리그로 완전히 이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월드컵도 놓칠 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내면서 터득한 선진축구의 생존법과 대표팀에서조차 주전을 꿰차지 못한 데서 나타난 위기감은 안정환을 확 바꿔놓았다. 공을 잡는 순간부터 마지막 슈팅까지 혼자서 하려는 개인주의도 많이 개선돼 옆으로 빠져 들어가는 동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슛 동작도 불필요함을 없애 훨씬 간결해졌다.
또 명장 히딩크 감독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파워프로그램 덕택에 약점으로 지적되던 체력이 좋아졌다.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플레이에 자신감이 생겨 골결정력까지 좋아졌다. 월드컵 본선 직전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2골을 넣으면서 히딩크 감독의 완전한 신임을 얻은 그는 10일 미국전에서 마침내 월드컵 데뷔골을 터뜨렸다.
대구〓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