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첫 출전국 세네갈이 우승후보 프랑스를 1-0으로 꺾으며 시작된 ‘축구 드라마’는 개막 이후 보름동안 숱한 이변을 낳으며 지구인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놓았다.
팀당 3경기씩 치른 14일 현재 세계축구의 판도는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유럽, 특히 북유럽 팀들의 득세가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다. 전후반 90분간 상대를 쉴 새 없이 압박, 경기를 지배하지 않으면 현대축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북유럽 강세〓강한 체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북유럽 축구를 이끌고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이 각각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덴마크는 1일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2-1로 낙승한 데 이어 막판에 몰린 프랑스까지 예상을 깨고 2-0으로 잡아 전 대회 우승팀을 가장 먼저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죽음의 F조’에서는 스웨덴이 아프리카 축구의 기수 나이지리아를 꺾고,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강력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와 비긴 끝에 역시 조 1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유럽에서는 스페인 터키 독일 잉글랜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이 16강 대열에 합류했고, 멕시코 미국의 북중미도 예상밖의 강세를 보였다.
반면 개인기에 치중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 등 남미팀들은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최강 브라질이 남미축구의 자존심을 지켰으며 파라과이는 16강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데 그쳤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 세네갈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세계축구의 ‘주류’에 합류하지 못한 수준. 크로아티아 폴란드로 대변되는 동유럽 축구의 몰락도 눈에 띈다.
▽압박과 스피드〓이번 월드컵에서 승패의 명암을 가른 ‘키 워드’는 압박과 스피드. 강한 압박에 바탕한 미드필드에서의 치열한 공방, 스피드를 앞세운 측면공격 등이 두드러진 전술적 특징이 되고 있는 것.
이같은 경향은 이번 대회에서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에 놓여있는 팀들이 강호들을 격파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세계축구의 평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단적인 예가 한국과 미국, 일본. 한국은 강한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워 ‘허리싸움’에서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으며 경기를 지배했으며 미국도 비즐리, 도노번, 오브라이언 등 젊고 빠른 미드필더들을 주전으로 발탁, 거함 포르투갈을 격침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일본 역시 경기당 30개 안팎의 파울을 범하는 ‘거친 축구’로 개인기의 열세를 충분히 커버했다.
반면 이같은 세계축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대다수의 남미팀들과 ‘아트사커’의 굴레에 얽매인 프랑스는 상대 팀들의 끈질긴 압박공세를 당해내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 멤버인 프랭크 퍼리나 호주 감독은 “치열한 미드필드 공방, 공수 양면에 걸친 강한 압박, 스피드를 앞세운 측면 공격 등이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전술적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